“시중에 제가 맥주 사업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진로는 꼭 가져가겠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꼭 사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는 얘기고 결국 임직원 모두의 노력에 힘입어 인수에 성공했지요”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의 회고다. 진로 인수에 임했던 하이트의 비장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지난 2005년 M&A시장을 달구었던 ‘황금 두꺼비’ 진로 인수전은 10여개 굴지의 기업들이 뛰어든 국내 최대 M&A 매물 중 하나였다. 대부분이 막강한 자금력과 유통 노하우를 갖춘 롯데, CJ, 두산의 3파전을 예상했다. 일부에서는 오비맥주의 최대주주인 인베브와 손잡은 대한전선을 꼽기도 했으며 현금 동원력이 높은 태광도 다크호스로 지목됐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결국 하이트에게 미소를 건넸다. 입찰에 참가한 10개 기업중 외형이 가장 작은 하이트가 진로를 가져가면서 ‘하이트 제국’이 탄생했다. 소주와 맥주를 아우르면서 탄생한 하이트 제국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종합주류업체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물론 주류 시장에도 빅뱅을 몰고왔다. ◇허(虛)를 찌른 인수 전략 = 진로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는 2005년 4월초. 뚜껑을 연 결과는 ‘경악’ 그 자체였다. 그 동안 대상 기업으로 전혀 주목받지 않은데다 입찰에 참가한 10개기업중 가장 외형이 작은 하이트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높은 입찰가격을 써내 면서 나머지 업체들을 ‘가볍게’ 따돌리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하이트는 입찰 발표 당일에야 세간에 노출됐지만 정작 진로 인수 작업에 착수한 것은 진로의 법정관리 개시 직후인 2003년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문덕 회장이 ‘회사의 사활을 걸고 반드시 진로를 인수하라’는 특명을 내린 직후부터 하이트는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2004년 UBS증권을 파트너로 삼고 그 해 6월에는 법무법인 지평을 자문 로펌사로 지정했다. 곧 이어 교원공제회, 군인공제회, 새마을금고 등 토종자본들이 컨소시엄으로 속속 합류했다. 이 같은 일사불란한 작업에도 불구 하이트가 세간에 진로 인수후보로 오르내리지 않은 것은 철저히 함구하라는 박 회장의 엄명에 따라 보안 유지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하이트의 가격 전략 역시 윤 사장의 지적대로 입찰에 참여한 다른 M&A 전문가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이 본 진로의 적정가격은 2조5,000억원 전후였는데 하이트는 이보다 7,100억원이나 높은 3조4,100억원을 써냈던 것. 2위 응찰업체인 대한전선의 2조9,600억원과 비교해도 무려 4,500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무모한 액수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이트는 2~3곳의 복수 우선 협상자가 선정돼 이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결선투표’를 하는 과정이 발생할 경우 자금력이 우수한 대기업들과의 싸움이 불리하다고 보고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관건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하이트는 진로 채권단이 회수할 총액 3조500~3조1,000억원에 10%를 더 얹은 3조4,000억원에 플러스 알파인 100억원을 더해 3조4,100억원의 낙찰액을 산출해냈다. 하이트가 응찰 금액을 계산한 방식에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다. 응찰 금액 가운데 진로 채권단이 회수할 3조500억원을 넘는 3,600억원은 다시 진로로 유입되기 때문에 실제 인수 금액은 대한전선보다 900억원 높은데 불과한 셈이라는 것. 여기에 진로가 5,000억원의 현금을 갖고 있고 현금화할 수 있는 부동산 자산도 1,000억원에 달해 실질 인수금액은 2조4,000억원 정도라는 설명이다. 윤사장은 “하이트의 응찰 가격은 진로 인수전략의 백미였지요. 응찰 가격을 정하던 순간이 인수전에서 가장 긴박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는 응찰 금액 가운데 채권단이 회수하고 남은 돈이 다시 진로로 유입된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다른 업체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더군요”라고 말했다. ◇10년만에 다시 쓰는 신화 = 오비맥주의 40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맥주시장 1위로 등극한지 10년만에 하이트는 황금 두꺼비를 품에 안으면서 또 한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만년 2위가 1위 자리를 빼앗은 하이트 신화는 국내 마케팅사에 길이 남는 한편의 드라마로 널리 회자돼 왔다. 대표로 취임한 박문덕 회장은 지난 92년 당시 크라운맥주의 시장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지자 수십년간 갖고있던 브랜드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신제품을 내놓는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경쟁사인 오비맥주의 두산그룹이 페놀 사태로 곤욕을 치른 틈을 타 ‘지하에서 퍼올린 천연 암반수로 만든 깨끗한 맥주-하이트’를 개발한 것. 진로 인수 역시 박 회장이 연출해낸 또 한편의 드라마였다. 박 회장은 이번에도 사활을 건 결단을 통해 새로운 성공신화에 성큼 다가서게 됐다. 박 회장이 사활을 걸고 진로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그만큼 위기의식이 컸기 때문이다. 진로가 다른 대기업에 인수될 경우 맥주 사업까지 존폐의 기로에 놓일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었다. 하이트 관계자는 “오비맥주의 최대 주주이자 세계 최대 맥주 생산업체인 인베브가 대한전선과 손잡았었다. 그들이 진로를 인수할 경우는…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였다”고 회고했다. 무모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비싼 값을 적어낸 것은 그만큼 꼭 사야 한다는 열망이 크다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이제 진로 인수 1년을 넘긴 하이트는 통합 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일만 남았다. 진로 인수를 통해 하이트는 국내 시장에서도 물류 통합 등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내고 소주와 맥주를 결합한 막강 파워를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또 해외 시장에서도 진로 소주의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주류 종합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