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가 선정한 '2012 세계 디자인 수도(WDC)'다. '디자인을 일상 속으로'라는 비전 아래 헬싱키는 300여개의 디자인을 통한 사회 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배운다. 이들에게 디자인 수업은 단순한 꾸미기ㆍ그리기 수업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은 디자인 수업을 통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문제점을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방법부터 학습한다. 어릴 때부터 디자인을 활용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저평가→불공정 용역 악순환 단절
하지만 2010 세계 디자인 수도였던 서울을 안은 한국은 일부 시범학교만 선택적으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은 미술과 디자인이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핀란드와 디자인에 대한 인식 수준 자체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산업계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가치와 위상의 차이로 이어진다. 핀란드를 비롯한 디자인 선진국에서는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가진 디자이너가 제품 개발 전(全)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디자인에 기술을 접목한다는 시각이 강하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선도기업을 제외하면 '디자인은 기술 작업이 완료된 뒤 제품 개발 마지막 단계에 진행되는 외관 작업(styling)' 수준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기업에 디자인은 미적 치장 이상이 아닌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우리나라 디자인산업 발전에 심각한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 디자인 용역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발주자 중심으로 계약을 진행, 불공정거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디자인 업계의 만성적인 불공정거래는 다시 디자인산업의 영세화, 저임금,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
최근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실시한 '디자인기업 피해사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디자인 전문회사의 61%가 불공정거래를 경험했다. 이로 인한 피해금액은 2,000만~1억원(43%), 1억~2억원(29%) 순이었다. 평균 매출액 6억원, 영업이익 8,000만원 규모의 대다수 영세 디자인 전문회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이다.
열악한 환경은 업계 초봉에도 영향을 미쳐 디자인 전문회사의 디자이너 초봉은 대기업 신입사원 초임 평균인 3,400만원의 절반 수준인 1,800만원 안팎에서 형성되는 실정이다.
21세기는 감성과 융합의 시대다. 디자인은 기술과 감성을 융합해 창의적 혁신을 이루는 핵심 매개체다. 산업 발전 방향과 미래 비전을 고려할 때 앞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국가 디자인 전략 짜고 투자 늘려야
디자인산업은 그 특성상 인건비를 제외한 고정비가 많이 들지 않고 부가가치 창출 및 매출 효과가 기술 투자의 각각 2배, 3배에 이른다. 게다가 비용 효과는 기술 투자의 10배에 이른다. 반면 비용 회수기간은 기술 투자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해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인 혁신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도 법과 제도 개선을 기반으로 국가 차원의 디자인 전략을 수립하고 디자인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ㆍ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다만 현 시점에서 정부 전략보다 시급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국민과 기업의 인식 제고를 통한 국가적 합의 기반 마련이다. 정부가 국가적 전략 수립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디자인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반드시 기반이 돼야만 디자인업계의 불공정 거래를 개선하고 산업 저변을 확대하는 밑그림을 꼼꼼히 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