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총선을 앞둔 일본에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가 최근 "무제한 양적완화로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선언해 금융시장의 환영을 받는 가운데 집권 민주당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BOJ는 20일 금융정책위원회에서 자산매입 규모를 현행 91조엔(1,211조원)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해 '결단의 시기'를 다음달 16일 치러지는 총선 이후로 미뤘다. 법적으로 독립성을 보장 받고 있는 BOJ의 통화정책 방향이 새삼 총선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시라카와 마사아키 BOJ 총재의 임기가 내년 4월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부총재 2명은 이보다 한달 빠른 3월 임기가 마무리된다.
총재를 포함한 BOJ 정책이사회 멤버들의 임기는 5년간 보장된다. 정책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선임과정에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상대로 자민당이 중의원을 장악할 경우 아베 총재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수장에 오를 개연성이 높다. 실제 아베 총재는 최근 "내년에 BOJ 총재가 선출돼 다행이다. 정부의 강한 목소리를 통화정책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현재 BOJ 정책이사회 멤버 9명 중 경기부양에 너그러운 '비둘기파'는 2명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아베 측 인사 3명이 더해지면 자민당이 순식간에 BOJ의 과반을 장악하는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경우 BOJ가 내년부터 매달 2조엔의 국채를 사들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도쿄증시가 오르고 엔화 값이 하락하는 이른바 '아베 랠리'로 코너에 몰린 민주당은 경고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이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은행이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것은 법적으로 분명히 금지된 수단"이라며 "태평양전쟁 기간에 국채를 직매입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초래한 과거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공세를 폈다. 마에하라 세이지 경제재정상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은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아베 총재의 잇따른 발언이 '총선용' 레토릭(정치적 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BOJ가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 일시적으로 경기부양 효과를 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채증가에 따른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한 통화완화 정책이 공연히 물가만 자극해 경제는 성장하지 않으면서 물가만 뛰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