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7월 9일] 유럽 베짱이들의 비명

취직, 그리 어렵지 않다. 학점이 좋지 않아도 된다. '스펙'도 변수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다. 정치인을 동원할 수 있는 '줄'은 있어야 한다. 이런 '줄'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어느 나라 얘기냐고(?). 바로 그리스다. 그리스에서 합작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후 현재 국내 증권사 CEO로 재직 중인 인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포퓰리즘이 낳은 연금 부실 일하는 사람은 없고 놀고 즐기는 사람만 양산한 포퓰리즘이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리스의 포퓰리즘은 연금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리스에서는 선민(選民)의 씨가 따로 있다. 부모가 공무원이라면 자식도 공무원 연금 혜택을 누린다. 그리스 연금법에 따르면 공무원 자녀는 1명에 한해 독신으로 산다는 조건 아래 부모가 받던 연금의 일부를 죽을 때까지 타 먹을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정년 퇴직하면 보통 퇴직 직전 급여의 96%를 연금으로 수령한다. 독일의 경우 이 비율이 48%에 불과하다. 그리스는 연금 수령액을 결정할 때 퇴직 직전 5년간의 평균 급여를 기준으로 삼는다. 반면 독일은 전체 근로기간의 평균 급여를 바탕으로 연금 수령액을 결정한다. 공무원 연금은 더욱 가관이다. 지난 1992년까지만 해도 공무원은 연금에 대한 자기부담금을 내지 않았다. 자신은 돈 한푼 내지 않고도 정년 퇴직하면 꼬박꼬박 연금을 챙길 수 있었다. 더욱이 여성 공무원의 경우 자녀가 18세 미만이라면 언제라도 조기 퇴직한 후 연금을 챙길 수 있다. 연금 수령을 위한 퇴직 연령은 58세지만 상당수 근로자들이 조기 퇴직을 선택한다. 일단 연금법에 따라 58세 이전에 퇴직할 수 있는 직업도 많다. 업무 강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미용사, 사우나 종사자도 포함된다. 이러다 보니 근로자 1.7명이 퇴직자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게 다 포퓰리즘 덕분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이익단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근로자의 부담은 줄이는 대신 연금 혜택은 늘렸다. 그래서 오래 지속될 수 없어도 일단 겉모양만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금제도를 자랑하게 됐다. 이런 연금 제도도 이제 옛날 얘기로 끝나게 됐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자금 지원의 대가로 연금 개혁을 골자로 한 재정긴축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항은 만만치 않다. 그리스 노동계는 8일 연금 개혁을 비롯한 재정 긴축에 반발, 또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밖에서는 '터무니 없는 행동'이라며 혀를 끌끌 차지만 그리스인들은 생존 문제로 여긴다. 두개를 갖고 있는데 하나를 더 주면 좋아하지만 세 개에서 하나를 뺏으면 거세게 반발한다. 그게 인간의 모습이다. 그리스 근로자 입장에서 연금 개혁은 편안한 노후생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적게 걷고 많이 쓰다가 거덜나 그리스 정부의 거듭된 다짐에도 국제금융시장은 아직도 불안한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리스는 오는 10월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9월 이전에 연금개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프랑스ㆍ스페인 등 다른 나라 사정도 비슷하다. '삶의 질'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 나머지 존속하기 어려운 연금 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재정적자 부담도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많이 쓰면 많이 거둬야 한다. 이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상식을 외면했다. 유럽의 법인세율은 대체로 미국보다 낮다. 미국의 법인세율(지방정부 부과분 포함 기준)이 39.2%인 데 반해 ▦프랑스 34.4% ▦스페인 30.0% ▦포르투갈 26.5% ▦그리스 24.0%다. 심지어 아일랜드는 12.5%다.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세금은 적게 거두면서 돈은 흥청망청 써댔으니 나라 살림이 거덜날 수밖에 없었다. 재정 문제에 관한 한 유럽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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