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루먹은 말에 겨우 얼기설기 걸친 갑옷, 긴 창을 갖춘 노년의 미치광이 기사. 그리고 당나귀에 볼품없는 체구의 산초. 만화와 영화, 동화, 심지어는 패러디 작품까지 다양하게 변용된 이 조합의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장 유명한 풍차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권에 번역되고, 현재까지도 국립도서관이나 대학, 언론, 작가 등이 선정하는 고전 목록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의 원래 분량이 원고지로 6,700매, 책으로는 1,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는 것은 잘 모른다. 기껏해야 얇은 책 1권 정도의 다이제스트(요약본)인데다, 그나마도 돈키호테가 겪은 두 번의 모험을 담은 1권만 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발간된 돈키호테는 고려대 안영옥 교수가 5년여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무엇보다 2권까지 스페인 판본을 텍스트로 번역했다. 현재 쓰이지 않는 고어와 만연체는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우리 말로 대체하고, 840여 개의 각주로 부연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지역은 물론 작가의 고향까지 두루 답사했다. 1863년 발표된 프랑스 유명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돈키호테' 삽화 100여 점도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1권 이후 꼭 10년 만에 출간된 2권에는 돈키호테의 세 번째 모험이 그려진다.
두 번의 출정 뒤 한 달여 요양한 돈키호테는 기어이 산초를 설득해 다시 수행길에 오른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모험담을 익히 알고 있다는 것.
하지만 공작 부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돈키호테 일행을 희롱하고 골탕먹이는 가운데, 이들을 다시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삼손 가라스코의 노력이 이어진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허황되게 약속했듯 정말 섬의 통치자가 된 산초, '하얀 달의 기사'에게 패배해 집으로 돌아오는 돈키호테의 비극이 있다.
얼마 되지 않아 죽은 그의 비문은 이렇게 쓰였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 강인한 이달고(하급귀족)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 세상은 그가 무서워 /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 그가 미쳐 살다가 /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전 2권 각 1만5,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