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눈에 띌만한 이슈가 없는 탓인지 월가에서는 '게싱 게임(guessing game)'이 한창이다. 이달 말 와이오밍주의 휴양지 잭슨홀에서 열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연례심포지엄에서 벤 버냉키 의장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지난 1982년 시작된 이 심포지엄은 과거 FRB 관계자와 FRB 총재,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경제학자 등이 모여 경제현황을 진단하고 서로 이해를 넓히는 자리였지만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형 이벤트로 바뀌었다. 2010년 버냉키 의장은 잭슨홀 연설을 통해 2차 양적완화(QE)를 강하게 시사해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한 바 있다.
올해 행사를 앞두고 많은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유로존 위기 등으로 지지부진한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버냉키 의장이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더라도 3차 양적완화를 포함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암시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사실 양적완화와 월가의 이익이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기대는 '종용'에 가깝다. 1차 양적완화가 실시됐던 2009년 월가의 5대 은행은 사상최대인 780억달러 채권매매 수입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이 월가의 바람처럼 이번 잭슨홀 미팅에서 3차 양적완화를 시사할지는 미지수다. 우선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수단인 금리 인하와 통화공급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금리는 사상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지만 은행들은 1조5,000억달러가 넘는 현금을 대출에 사용하지 않은 채 FRB에 예치해놓고 있다. 이런 상황은 그 누구보다 버냉키 의장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FRB에 대한 신뢰 역시 흔들리고 있다. 매파들은 FRB의 완화적인 정책이 되레 금융시스템을 약하게 만들었으며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위협 속에 빠져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시절 예산국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톡먼은 "ABCD, 즉 '버냉키가 파괴하지 못한 것(anything Bernanke can't destroy)'에 투자하라"고 꼬집기까지 했다. 반면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처럼 더욱더 적극적인 정부역할을 주장하는 이들은 FRB가 버락 오바마를 돕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 주어진 책무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의회와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부담이다.
버냉키 의장은 최근 한 연설에서 경제학에 대해 "금전이나 물질적 혜택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복리(well being)'의 증진과 이해에 관한 학문"이라며,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 중앙은행 총재의 결정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국가 경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가 과연 정책을 결정하면서 세계인들의 복리까지 고려할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