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産 원산지 세탁 차단' FTA 체결국들 요청 증가… EU등 조사 강도도 높여
관세행정, 수입관리서 수출지원 강화로 바꿀 것 가격공개 수입 품목 공산품등 50개로 늘려 물가 안정에도 기여
우리 통관시스템 '유니패스' 이달 네팔등으로 수출 지난달 22일 취임한 주영섭(54ㆍ사진) 관세청장이 22일 국내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1970년대 후반 고시를 준비할 때 서울경제를 읽으며 경제공부를 한 오랜 인연이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한 이유라며 주 청장은 취임 한 달이 아닌 세정 30년간 쌓은 내공을 고스란히 쏟아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원산지 세탁을 확실히 차단해달라'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요청이 최근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환적화물을 집중적으로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 청장은 "유럽연합(EU) 등 FTA 체결국이 가짜 한국산 제품을 가려내기 위해 수출품의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며 "관세청과 함께 기업도 수출관리를 강화해나갈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입가 공개 품목을 50개 이상으로 늘리고 대상도 농축수산물에서 공산품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라며 "소비자가 수입가와 국내 판매가를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청장은 "세계 최고인 한국 수출입시스템의 개발도상국 수출도 확대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제정책 중 세제는 국민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영향을 맺고 있다. 그래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경제부처에서 가장 힘 있는 보직으로 꼽힌다. 하지만 세제실은 소수정예의 별동대다. 주 청장은 "관세청 수장에 오르며 완전히 다른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50여개 공항·항만의 관문을 지키는 4,500여명의 공무원을 지휘·통솔하는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그의 관세청 경영 키워드는 무엇일까. "기업하기 좋은 관세환경을 조성하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규제를 적극적으로 혁파해나가야 합니다. 관세행정의 모든 제도와 관행을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제점을 찾아 근원적으로 해결할 겁니다. 아울러 FTA를 한국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할 것입니다. 관세청은 그동안 수입관리는 엄격히 했지만 수출은 빨리, 많이 할수록 좋다고 여겨 별다른 관리와 통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FTA 혜택을 최대한 누리고 피해는 최소화하려면 이제 수출도 관리가 필요해졌습니다." FTA는 확실히 최근 한국경제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하지만 FTA가 관세행정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관세청이 FTA 시대에 발맞춰 수출관리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FTA는 체결국끼리 관세를 없애거나 낮춰주며 일종의 특혜무역을 하는 것입니다. 비체결국 기업이나 수출입업자 입장에서는 FTA 혜택을 누리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 공항·항만을 들고나는 화물의 3분의1이 환적을 위한 것이고 그중 중국산 화물이 상당합니다. 미국과 EU는 중국산 제품이 원산지를 세탁해 자국에 수입될까 걱정을 많이 하면서 최근에 부쩍 중국산 제품의 관리를 철저히 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중국산이 '메이드 인 코리아'로 둔갑해 해외에서 값싸게 팔리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한국제품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고 한국의 신인도 역시 떨어지므로 수출품의 원산지 관리 등이 매우 중요해진 겁니다." 7월1일 세계 최대 경제권인 EU와의 FTA가 발효됐다. 정부는 한·EU FTA 효과에 관심이 높다.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있는 한미 FTA 비준의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EU FTA 준비기간이 짧아 활용률이 낮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EU FTA를 이용해 관세인하 혜택을 받으려면 6,000유로(약 970만원) 이상 수출업체는 반드시 세관에서 인증수출자 지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달 초순까지 4,333개 대상 기업 중 2,911개가 인증을 끝내 3분의2가 받았습니다. 대기업은 대부분 인증을 얻어 수출금액 기준으로는 85%를 넘었습니다. FTA를 이용하려면 기업이 원산지 인증 등에 비용이 드는데 그런 비용 대비 혜택이 큰 곳은 대부분 인증을 마친 것 같습니다. FTA 효과는 보통 발효 후 3~6개월 정도 지나야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유럽 재정위기로 현지 경기가 나빠지고 있지만 우리 수출기업은 FTA로 경쟁국에 비해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만 EU는 FTA 경험이 많아 원산지 인증이 잘못됐거나 중국 등 3국산 물품을 가려내는 노하우가 잘 갖춰져 있고 조사도 강도 높게 하기 때문에 수출기업은 원산지 검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중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문이 물가안정이다. 언뜻 관세청은 물가와 별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국내에 수입되는 모든 원자재 및 가공품ㆍ제품은 세관을 통과해야 국내 판매가 가능하다. 모든 수입품의 가격정보를 관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가와 판매가 사이의 폭을 줄이려면 수입업자는 관세 등 세금을 많이 물어야 하고 반대로 하면 세금탈루로 처벌받게 된다. 관세청의 수입제품 가격공개 확대가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매주 수입 쇠고기나 삼겹살 등 농축수산물 37개 품목에 대해 수입가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체감도는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달 중 가격 공개품목을 50개 이상으로 확대하고 여기에 공산품도 추가할 것입니다. 종류별로 수입 최고가와 최저가ㆍ중간가격 등도 공개하고 국내 판매가격도 조사해 함께 소비자에게 제시할 겁니다. 고가의 수입품들은 수입신고 후 물류비와 마케팅비ㆍ마진 등을 고려해도 가격이 너무 비싼 게 사실입니다. 일부 수입업체는 수입가 대비 3~4배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내다팔기도 합니다. 가격공개를 확대하면 소비자의 지혜로운 쇼핑을 유도하고 수입품의 가격인하도 촉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는 가격공개 확대와 함께 "낮은 관세를 적용받아 수입되는 농축수산물이 신속히 세관을 통과될 수 있게 하는 한편 수입업자들이 가격을 조정할 목적으로 장기간 보세구역에 수입품을 보관할 경우 반출명령을 내리고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세청의 주요 업무 중 세수확보는 빼놓을 수 없는 사명이다. 복지확대 등 갈수록 정부의 돈 쓸 곳이 많아지고 있어 세수가 안정적인지 궁금한데 주 청장의 답변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됐다. "관세청은 관세와 더불어 함께 붙는 부가가치세ㆍ개별소비세ㆍ주세ㆍ교육세 등 6개 내국세와 지방세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관세청 세수가 약 56조원이어서 전체 국세의 31%를 차지했는데 올 해 세수목표는 지방소비세 2조원을 포함해 63조원가량입니다. 올 상반기까지 약 34조원을 거뒀으니 목표 대비 54%를 채운 것인데 최근 5년 상반기 평균 진도율보다 5.3%나 높은 수치입니다. 수출입은 하반기로 갈수록 보통 더 늘기 때문에 올해 목표세수는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경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세수확보 못지않은 관세청의 주요 미션이다. 주 청장은 환치기 등을 통한 불법 자금세탁을 비롯해 고도로 지능화되고 있는 밀수ㆍ부정물픔의 시중유통에 대해 엄정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천명한 '공정사회'를 이루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무역이 사상 최초로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됩니다. 무역이 느는 만큼 탈세, 외화도피, 원산지 둔갑 등 불법·부정행위도 증가합니다. 상반기까지 불법 무역거래는 건수가 줄었지만 금액은 2조7,000억원에 달하며 늘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최근 역외탈세에 있어 선박왕ㆍ구리왕 등의 혐의를 포착해 경계로 삼고 있는데 관세청도 연말까지 불법·부정무역을 특별단속해 대형 관세 및 외환사범을 적발해내려고 합니다. 특히 불법적인 해외 자본유출입에 대한 조사를 집중할 것입니다." 해외여행이 크게 늘면서 세관을 편하게 통과하고 싶은 국민적 욕구는 커지고 있다. 1990년 약 400만명이던 해외여행객은 지난해 3,700만명으로 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 머물러 있는 400달러의 면세 한도가 너무 낮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휴가철인 여름에는 해외여행객이 많고, 특히 유럽이나 홍콩 등 명품구입이 많은 나라에서 들어오는 항공기의 물품검사는 전수조사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홍콩발 비행기 하나를 골라 승객 전부를 조사하기도 합니다. 이달 말까지는 이런 전수조사가 종종 있는 만큼 성실히 면세신고를 하기 바랍니다. 보통은 전체 여행객의 3% 정도만 가려 샘플 조사를 하기 때문에 일반여행객은 별다른 불편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면세품 구매한도가 아주 오래 전에 책정돼 현재의 물가나 소득수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좋지 않은데 해외에서 고가의 소비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조세연구원이 적정한 면세 구매한도를 연구 중인데 이달 말쯤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조세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고려해 면세 구매한도를 조정할 계획입니다." 관세청 수장으로서 그는 조직을 홍보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세계은행은 최근 2년 연속 한국 관세청을 통관지원 분야에서 세계 경쟁력 1위로 평가했다. 핵심은 '유니패스'로 불리는 원스톱 통관행정시스템에 있다. "유니패스는 우리 전자통관시스템의 브랜드인데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과 손잡고 지금까지 카자흐스탄ㆍ몽골ㆍ도미니카 등 6개국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출해 6,200만달러의 외화를 벌었습니다. 한국의 수출입 통관시스템을 세계에 수출한 겁니다. 이르면 이달 중 네팔과 탄자니아에 새로 유니패스가 수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미 유니패스가 설치된 에콰도르에는 2,400만달러 상당의 개선된 시스템이 추가로 수출될 예정입니다. 한국의 관세행정이 국제표준으로 확산될수록 국내 기업의 수출은 한결 편해지고 탄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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