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민심 달래기 급급… 정책현안은 뒷전에

■ 쇠고기 파동에 MB노믹스 좌초 위기<br>노조·지역 주민 반발 우려 주요정책 줄줄이 연기<br>민생사범 대규모 사면등 선심성 정책만 쏟아내<br>"충분한 국민 설득통해 정부 신뢰도 회복 나서야"


“정해진 계획에 따라 정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달라.” 지난 4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두발언이다. 뒤집어보면 광우병 논란에 밀려 정책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임기 초반 ‘강부자 내각’ ‘고소영 라인’ 논란에 이어 미국산 쇠고기 파동까지 겹치면서 각 부처들의 정책 집행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실제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5일 “최근 청와대가 서민생활을 최우선으로 챙기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정부의 관심이 온통 물가 등 민심 달래기에만 몰리면서 감세와 규제완화, 공공 부문 개혁 등 다른 중요 사안에 대한 후속조치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 현안 발표 줄줄이 연기=공공기관 통폐합 및 민영화 등을 골자로 하는 공기업 개혁방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지난달 말 발표 계획은 무산됐고 다음달까지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임기 초반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공기업 노조나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정면 돌파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쇠고기 등의 문제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노조의 대규모 저항에 직면할 경우 타개책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기업환경개선 추진 계획, 건설부문 투자지원 방안, 금산분리 완화 방안 등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도 늦어지고 있다. 재정부는 당초 5월 말까지 기업환경개선 1차 대책을 마련하고 법률 개정이 필요한 수도권 및 대기업 규제 등에 대해서는 6월 말까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일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1차 기업환경개선 추진계획을 상정해 최종 심의ㆍ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비공개로 논의한 뒤 발표시기를 서민대책 이후인 다음주로 연기했다. 건설부문 투자지원 방안도 이번주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다음주로 미뤄졌다. 기업환경개선대책을 먼저 발표할 경우 ‘기업만 챙긴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산업 관련 정책도 마찬가지다. 금융위원회는 6월 말까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 발표한 뒤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9월 말까지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나 예정대로 발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일상 업무는 차질ㆍ선심성 정책만 난무=광우병 파동은 원자력발전 방안 마련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정부는 초고유가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26일 3차 국가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적정한 원전 비중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회의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또 정부는 올해부터 사용 후 핵연료 처리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원전에 대한 반대의견이 분명하게 있는 만큼 신중하고 꼼꼼한 정책 준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쇠고기 외의 농업정책도 사실상 사라졌다. 농업정책 주무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는 쇠고기에 주력하느라 정운천 장관이 취임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던 시ㆍ군 단위 유통회사, 농촌 지역 뉴타운 조성 등의 정책을 챙길 여유가 없다. 더구나 정 장관 경질설까지 나오고 있어 내부 분위기까지 뒤숭숭하다. 반면 정부는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는 실정이다. 극도로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다. 각종 민생사범에 대한 대규모 사면이 단적인 사례다. 교통법규 위반자 248만명의 운전면허 벌점도 삭제했다. 2일에는 원유유출 피해를 입었던 태안 지역에 200억원의 긴급자금을 추가 지원, 특별 공공근로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그동안 정부는 일자리는 민간 영역에서 창출해야 한다며 공공근로사업을 가급적 지양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 신뢰도 회복과 안정 위주의 경제운용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최경환 한나라당 수석정책조정위원장도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MB노믹스 방향에 대해 “지금은 경제상황상 안정 위주의 정책을 펴야 한다”며 환율과 금리도 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최근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경제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며 “쇠고기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중요 현안에 대해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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