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5년차 이형국(32)씨는 자칭 ‘펀드 도사’였습니다. 이씨의 펀드 역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ROTC로 군 복무하면서 받은 첫 월급으로 ‘미래에셋디스커버리’를 적립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수익률이 200%를 넘었지요. 제대하고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 취직해선 증권사 창구 직원이 권해준 ‘봉쥬르차이나’ 펀드에 가입했습니다. 이듬해 받은 성과급은 친디아 펀드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불린 돈으로 차도 사고 예쁜 여자친구와 결혼도 했습니다. 펀드가 없었으면 지금 살고 있는 분당 전세집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결혼 후 이형국씨는 펀드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택하는 펀드마다 연 수십퍼센트의 수익률을 보이면서 펀드투자를 맹신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연말, 펀드를 깨서 집을 장만하자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죠. “집이 밥 먹여주냐? 펀드가 밥 먹여 주지.”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당신 때문에 집도 못 사고 펀드도 까먹었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바가지를 긁습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게, 펀드로 전세금 마련하고 결혼자금 마련한 건 다 잊은 채 연일 뚝뚝 떨어지는 마이너스 수익률에 속을 끓입니다. 월급날마다 적립식 ‘물타기’를 하고 있지만 손실은 계속 불어만 갑니다. ‘펀드 도사’를 자청했던 이형국씨,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요. 펀드로 한번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기에 불안감은 더욱 큽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열두번씩 환매와 물타기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이번 주 다트머니에서는 이형국씨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고자 합니다. 자고 나면 떨어지는 수익률에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투자자들이 이 기사를 읽고 한 시름 놓았으면 하네요. 무조건 목표수익률 추구보다는 자산 리스크 관리에 초점둬야
국내는 성장형·해외 이머징마켓 매력적…적립식 펀드는 추가 불입 노려볼만
ELS·ELF등 파생상품 인기 끌지만 전체 자산 20%이내로 비중 축소를 "작년에 가입한 중국펀드가 반토막이 났어요. 어떻게 해야죠?" "미래에셋펀드가 좋다고 해서 적금까지 깨 가입했는데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져요." 주요 포털사이트 재테크 섹션 기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댓글들이다. 코스피지수가 1,500대에 머물자 최근 들어선 '작년에 펀드를 추천했던 기자와 증권사 직원들 모두 잡아들여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성 댓글까지, 그 수위와 강도는 날로 높아져 간다. 지난해 말부터 증시 조정이 계속되면서 펀드에서 한 번도 '쓴 맛'을 보지 못한 대다수 초보 펀드 투자자들은 이제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며 '원금만 회복하면 다시는 펀드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까지 내뱉는 분위기다. 서울경제신문은 국내 증권사의 펀드 리서치들로부터 펀드 투자자들을 위해 약세장에서 펀드를 관리할 수 있는 전략을 들어봤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어렵지만 현 상황을 견디며 돌파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수익률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 자금의 목적과 쓰일 시기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이들은 조언한다. 또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주가연계증권(ELS) 등 파생상품의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전체 자산의 20% 이내로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엇보다도 현 장세에선 목표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 보단 안전하게 리스크 관리에 자산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한결 같은 조언이다. ◇'섣부른 환매는 금물…저가매수 기회잡아야'= 현 장세가 경기침체에 대한 가능성이 반영된 국면이어서 지금이 나쁘다고 앞으론 좋아질 것이란 막연한 낙관적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 이재경 삼성증권 펀드리서치파트장은 "전세계가 인플레이션 우려에 직면한 상황에서 펼치는 긴축정책은 경기침체에 대한 가능성을 높일 수 밖에 없다"며 "낙관적인 견해만을 가지기엔 큰 변동성에 노출돼 있는 게 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용규 미래에셋증권 상품기획팀장은 "신용경색ㆍ경기둔화 등 악재가 지속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국내 시장의 수급 공백 및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상황이 나쁘니까 지금이라도 현금화를 시켜 때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런 전략에 대해 고개를 내젓는다. 기존의 포트폴리오를 환매해 현금화하는 전략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질 뿐더러 개인 펀드투자자가 다시 상승할 타이밍을 잡는다는 것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칫 섣부른 환매 후 타이밍을 노리는 전략은 지난해 최고점에서 펀드투자에 물렸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이병훈 대우증권 펀드리서치파트장은 "들고 있는 펀드의 투자기간이나 수익률을 기준으로 펀드 전략을 바꾸는 것 보단 보유하고 있는 펀드 자체가 어떤 펀드인지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나의 펀드가 아직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혹은 손실이 너무 심해서 지금이라도 펀드를 환매하는 걸 결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안정균 SK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적립식의 경우 목표했던 수익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경우라도 환매를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불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했다. '물타기'는 어떨까. 일단은 긍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특히 적립식의 경우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 두려운 마음에 추가 불입을 멈춘다면 수익률 만회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재경 파트장은 "적립식 펀드는 당연히 추가불입해야 한다"며 "지금같이 주가가 낮은 시점은 펀드를 싸게 사 모을 수 있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기존 투자자라면 좀 더 관망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진입 기회를 찾고 있는 투자자라면 분할 매수를 통해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국내는 성장형, 해외는 이머징= 환매보단 추가매수 기회를 노린다는 원론적 관점에는 모든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어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일단 가치형보다는 여전히 성장형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용규 미래에셋 팀장은 "향후 반등장을 염두에 둔다면 중소형 가치주보다는 대형주 위주의 성장형 펀드로 집중해야 상승장에서 베타(bㆍ변동성 척도ㆍ1보다 크면 변동성이 높아 반등시 고수익이 기대됨)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대우증권 파트장도 "성장형을 핵심으로 하고 가치형을 보조 펀드로 구성하라"며 "다만 보수적 성향이라면 가치형펀드의 비중을 확대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위험 관리가 필요한 만큼 가치형에 중점을 두라는 의견도 있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락기엔 성장형보다 가치형 펀드가 수익률을 선방하는 만큼 조정장세가 길어진다는 판단 하에 가치형 펀드를 통해 수익률 하락폭을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승훈 한국투자증권 펀드분석팀 부장은 "국내외 장세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접근하는 것은 너무 막연하고 불확실하다"는 전제 하에 "위험자산 펀드의 비중이 과다할 경우엔 중장기 전망이 취약하거나 상대적으로 운용실적이 부진한 펀드 위주로 비중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해외 펀드의 경우 여전히 브릭스 등 이머징마켓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리서치연구원은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브라질 등 브릭스 관련지역의 투자메리트는 여타 국가보다 여전히 높다"며 "이들 국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대륙별로 가장 큰 이머징마켓을 모아놓은 지역군이라는 점에서 투자매력도가 가장 높다"고 진단했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고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이머징 마켓 중심의 펀드 보유전략을 유지하되 변동성 대비 기대수익률이 높은 선진시장에 대해서도 관심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주가연계증권(ELS)ㆍ주가연계펀드(ELF) 등으로 대표되는 파생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체 포트폴리오의 20% 안에서 이들 상품에 투자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다. 안정균 SK증권 연구원은 "원금보장 여부나 수익조건 등이 일반인이 이해하기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만큼 파생상품 비중은 10% 내외로 가져가길 권한다"고 말했다. 이들 파생상품은 조기상환ㆍ고수익 등을 선전하고 있지만 모든 게 투자자의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조기상환이 안 되면 정작 자신이 필요할 때 자금 확보를 하기 어렵다는 위험이 있다"며 "가입하더라도 상품의 특징은 물론 기초자산과 이에 대한 향후 전망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