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직원들에 "여권 맡겨라"… 저축은행 '씁쓸한 풍경'

황당하다기엔 안타까운…

금융사고 후 해외도주 늘자 '의무 제출' 고육지책 마련

직원들은 "권위주의적 발상"


얼마 전 한 저축은행에 입사한 윤지영(26·가명)씨는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입사하자마자 여권을 반납하라고 통보 받았기 때문이다. 신분증의 하나인 여권을 달라고 해 꺼림칙했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제출했다.

궁금해서 나중에 한 선배에게 제출해야 하는 이유를 넌지시 물어봤다. 선배들은 "사고 치고 해외로 도망갈까 싶어 걷은 것"이라고 얘기해줬고 '저축은행 사태'를 떠올리며 심정적으로 이해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일부 저축은행들이 직원들에게 여전히 여권을 의무적으로 받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도덕한 임직원들의 횡령 사고 이후 해외 도피가 끊이질 않자 몇몇 저축은행들이 회사가 개인의 여권을 보관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낸 것이다.


저축은행은 여권을 보관하고 있다가 여름 휴가철과 같이 수요가 생기는 일정 시기에 직원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이후 회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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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에도 해외에 나가지 않는 고참급 직원들은 관행이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젊은 직원들일수록 회사의 이 같은 행태가 불만스럽다.

한 저축은행 대리급 직원은 "지금 다니고 있는 저축은행은 피인수됐기에 여권 회수 관행이 없어졌지만 처음에는 사고 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회사에 맡겨놓았다"면서 "해외에 놀러 가고 싶지만 여권은 회사에 맡겨진 터라 분실신고를 하고 신규 발급 받아 여행을 떠난 해프닝이 있다. 지금도 일부 저축은행들이 이 같은 무의미한 관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권을 맡아 보관하고 있는 저축은행은 "모르는 일"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소문이다.

이런 모습에 최근 국내에 진출한 일부 외국계 임직원들은 이 같은 행태가 권위주의적 발상 아니냐고 혀를 차고 있다.

외국계 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직원들이 여권을 회사에 맡겨두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웠다. 해당 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이런 관행을 없앴다. 마치 권위주의 시대로 복귀한 것 같은 모습이 21세기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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