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 앞에 '진짜'가 나타났다. 네덜란드가 아르헨티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이유, 바로 아리언 로번(30·바이에른 뮌헨)이다. 웬만해서는 막을 수 없는 드리블의 두 제왕이 10일 오전5시(이하 한국시각) 상파울루 코린치앙스 아레나에서 열릴 2014브라질월드컵 4강에서 격돌한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본선에서만도 다섯 번째 만나는 전통의 라이벌. 물오른 로번과 메시, 두 골든볼(MVP) 경쟁자의 '빅뱅'으로 정리되는 이번 맞대결은 두 나라의 라이벌전 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누가 '유리몸'이래=네덜란드리그에서 프로에 데뷔해 에인트호번 시절 박지성·이영표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던 로번은 이후 잉글랜드 첼시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2009~2010시즌부터 독일 뮌헨에서 뛰고 있다. 이름난 구단들을 여럿 경험했지만 그가 한 시즌에 리그 30경기 이상을 뛴 횟수는 에인트호번 때의 2002~2003시즌 단 한번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깨지고 부서져 병원 신세를 지는 그에게는 '유리몸'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을 때는 공을 몰면서도 100m를 10초 초반에 끊는 '우사인 볼트급' 스피드와 공을 발에 붙인 듯한 드리블로 측면을 접수해버렸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친 분데스리가에 적응하며 튼튼해지기까지 했다. 이번 대회 연장 1경기를 포함한 5경기 출전기록도 모두 풀타임. 네덜란드가 뽑은 12골 중 4골에 관여(3골 1도움)했다.
지난 남아공대회에서도 골든볼 후보에 올랐던 로번. 수상이 좌절되고 팀도 준우승했던 아쉬움을 브라질에서 씻고 갈 수 있을까. 에인트호번 감독 시절 로번을 가르쳤고 이번 대회 뒤 네덜란드 대표팀 사령탑에 앉는 휘스 히딩크는 "아르헨티나에는 메시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로번이 있다. 메시가 하는 일을 로번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4골을 전부 왼발로 만들어낸 메시처럼 로번도 3골 모두를 왼발로 완성했다.
오른쪽 윙어지만 역습 때는 플레이메이커까지 하는 로번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바르셀로나)와 루카스 비글리아(라치오)의 역할이 크다. 마스체라노는 "네덜란드는 역습 속도가 세계 최고다. 불필요하게 공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지켜봐주세요=메시의 할아버지 안토니오 쿠치티니는 손자가 태어난 아르헨티나 로사리오를 지키고 있다. TV로 손자의 월드컵을 지켜보는 그에게는 불만이 많다. 그는 8일 인터뷰에서 "요즘 레오(메시 애칭)의 움직임이 둔하다"며 "스페인리그에서 그는 동료들까지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전기충격 그 자체였다. 원래의 레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월드컵 징크스'를 깨고 5경기에서 4골 1도움을 올린 메시지만 할아버지의 눈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다. 상대 10명이 90분간 수비만 해도 두세 골씩은 너끈히 넣는 게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손자의 본모습인 것 같다.
메시는 아르헨티나가 한 번밖에 못 이겨본 강적 네덜란드를 상대로 할아버지의 불만을 칭찬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는 역대전적에서 1승3무4패로 네덜란드에 크게 열세를 보였지만 그 1승이 바로 우승이었다. 지난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당시 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서 연장 끝에 3대1로 이겼다. 1대1이던 후반 종료 직전 네덜란드가 결정적 골 기회를 맞았지만 골대가 아르헨티나를 살렸다. 메시는 36년 전 드라마를 재연할 주인공이다. 이번 대회 팀의 8골 가운데 5골에 관여했다. 네덜란드전은 메시의 A매치 92번째 경기. 전 경기까지 42골을 터뜨린 그는 91경기에서 34골을 넣은 디에고 마라도나를 경기 수에서도 뛰어넘게 된다. 남은 숙제는 우승뿐. 하지만 네덜란드 수비수들은 어떻게든 메시의 숙제를 방해할 계획이다. 브루누 마르팅스 인디(페예노르트)는 "메시에게 가는 패스 연결 자체를 잘라놓아야 한다"고 원천봉쇄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