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1인1표와 1원1표는 '건강한 긴장관계' 이뤄야

지난해 연봉을 5억원 이상 받은 기업 등기임원들의 연봉 액수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에 최고경영자(CEO)의 고액 연봉을 둘러싼 논쟁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어느 재벌 총수가 수백억원의 보수를 받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 같은 과도한 연봉에 과연 누가 수긍하겠냐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경영자들의 피 말리는 시장경쟁과 과감한 투자에 대한 보상이라면서 연봉 공개는 단지 대중의 질시와 배 아픔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대중인기영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과연 재벌 총수를 비롯한 최고경영자들은 그토록 많은 돈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가, 아니면 그들 역시 사회적 시선과 여론재판을 의식해 일반 샐러리맨들과의 물리적 비례를 맞춰야 옳은가. 연봉 공개는 애당초 정치권에서 내건 것처럼 기업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서구 금융회사 경영진들이 보여준 모럴해저드와 과도한 성과보수 등이 사회의 비판을 받으면서 연봉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적 명분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단순히 최고경영자들의 연봉이 많다 적다는 문제가 아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만 이어진다면 이런 논란은 그야말로 '질투의 사회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연 경영성과에 걸맞은 보상체계를 정치권이 의도한 대로 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 아닌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즉 기업과 기업가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문명의 발전과 인류의 경제적 풍요가 가능하겠는지 여부다.


이 세상에서 모험가는 보통사람들이 감히 꿈꾸지 못하는 모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업가는 경영혁신과 시장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지적·물적 토대를 올인한다. 영국 민간기업인 버진갤럭틱의 최고경영자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평생 쌓아온 부(富)와 생명을 걸고 우주왕복 여행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슈퍼파워인 미국 정부의 산하기관 항공우주국(NASA)조차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한 인류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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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근한 예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도 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이건희 부자는 1980년대 경제계의 심각한 우려와 온갖 구설수를 뒤로 한 채 반도체에 기업의 운명을 걸었다. 만약 이런 고뇌와 결단의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네 정보통신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경우 삼성전자 대주주와 최고경영진의 수백억원짜리 성과보수는 과연 타당하냐는 또 다른 차원의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때마다 왕이나 대통령도 한 표를 행사하고 우리네 일반국민 역시 한 표를 행사한다. 평등의 원칙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과 기업의 영역은 민주주의 체제의 원칙인 평등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좋든 싫든 자본의 논리가 선행되는 곳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민주주의 체제와 달리 1원1표라는 데 있다. 그것이 평등의 민주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의 자본주의가 갖는 존재가치다. 이를 부정하고 기업과 시장에까지 1인1표를 주장하려 든다면 그것은 시장의 평등화를 요구하는 것이며 종국에는 공산주의로의 퇴로를 열어줄 뿐이다.

자본주의는 완벽한 경제 시스템이 아니다. 거기에는 불평등과 빈부격차라는 병폐가 따라다닌다. 민주주의 정체는 이 같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을 지니고 있다.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누진적 조세정책을 통해 부자들로부터 가난한 자들에게 소득을 이전해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세 및 재분배 정책은 이렇게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나 투자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는 엄연히 자본주의의 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1인1표와 자본주의의 1원1표는 상호충돌과 일방적 지배관계가 아니다. 그 둘 사이에 '건강한 긴장관계'가 형성돼야만 우리 사회는 원활한 작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 기업 임원 연봉을 둘러싼 논쟁이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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