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주요 부문마다 “낙제점” 추락(결산 96)

◎정부, 기업·근로자에 책임 전가/경제주체들에 「자성의 한해」로96년은 한국 경제가 추락한 한 해였다.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우쭐댄 우리 경제의 실력은 벼락치기 공부(고도성장)로 겉모양만 화려한 모래성에 불과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취약한 우리 경제의 실력을 각 경제주체들이 뼈아프게 자성할 기회를 줬다는 점이 위안거리였던 한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올해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성장률은 지난해 9%에서 7%로 급락했고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지난해 90억달러에서 사상최대인 2백20억달러로 확대됐다. 총외채규모는 7백84억달러에서 1천억달러를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도 4.7%에서 4.5%내외(추정)로 소폭 안정될 전망이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실물경제의 거울인 금융시장도 낙제점을 기록했다. 금리인하를 위한 정부의 갖가지 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표금리인 3년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지난해말 11.93%에서 12.60%로 오히려 올랐다. 경제상황의 체온계나 다름없는 증시는 지난 연말의 종합주가지수 8백82.94포인트에서 7백선 내외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한때 문민정부 출범지수인 6백50대를 위협해 정부가 증시부양책을 동원하기도 했다. 우리 돈의 가치도 달러당 7백74원70전에서 8백43원80전으로 뚝 떨어졌다. 경제의 주요 부문마다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부진을 나타내자 정부는 뒤늦게 원인진단에 나서는 등 법석을 떨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2년여 호황이 우리 경제의 자체 실력에서라기보다 경쟁자가 몸이 아파(엔화강세) 반사적으로 이익을 보는 등 외부요인 덕택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기술개발등 원칙을 중시하는 공부보다는 단기성과에 급급, 시설확장과 「날밤치기」 등 점수따기 위한 학습방법을 선호해온 결과 기초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그러나 워낙 묵은 버릇이라 알고서도 고치지 못한채 백가쟁명식으로 논의만 무성하고 실천이 부족해 제대로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일년내내 지속되고 있다. 경제악화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는 모든 원인을 기업 근로자 가계에 돌리면서 자기변신의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 고임금, 고물류비용, 고금리, 고지가 등 고비용구조와 저효율이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비효율적인 정부구조의 개혁 등은 시도할 시늉조차 않고 있다. 가계에는 절약을 요구하면서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고비용구조의 개선을 위한 노동법개정 작업도 짜임새없는 추진과 이해당사자의 반발에 밀려 해를 넘겨 겉돌고 있다. 여당과 정부가 한뜻으로 추진해도 성사시키기 어려운 판에 당정간 불협화음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야당도 논의진행과정동안 줄곧 딴청을 부리다 뒤늦게 무조건 반대의 목소리만 외치고 있다. 재계는 크게 불리할 것도 없는 노동법개정 방향에 대해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욕심을 부려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 노동계는 총파업 등 극한투쟁도 불사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계, 정부, 재계, 노동계가 저마다 제 목소리만 외칠뿐 상대의견을 경청할 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외국회사가 만드는 최고급위스키 생산량중 우리나라 국민이 소비하는 물량이 전체의 60%를 차지하는등 가계의 과소비는 더이상 얘기가 되지 않을 정도다. 공보처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대부분(93%) 과소비가 심각하다면서 극소수(17%)만 자신의 과소비를 인정한다. 만연된 과소비현상을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릴 뿐 자신의 행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는 실종된 것이다. 올해는 정부, 정치인, 기업, 근로자, 가계 등 경제의 각 주체들이 경제난의 책임을 더이상 타인에게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자기개혁에 나서야 함을 절감한 해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최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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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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