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신지애의 대항마' 유소연, "골프는 바이올린보다 매력적인 운동"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지난 4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는 또 한 번의 이변이 연출됐다. 프로무대에 갓 데뷔한 루키가 시즌 개막전인 스포츠서울-김영주골프여자오픈에서 데뷔전 우승을 터트린 것이다. 30년에 이르는 KLPGA 투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회가 열린 제주 제피로스 골프장은 지난해 4월 김경태가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서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투어 최초의 데뷔전 우승을 기록한 곳. KPGA 투어의 역사적인 장소에서 KLPGA 투어도 1년 만에 그 영광을 재현한 것이다. 대회가 열린 사흘간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2위를 4타 차로 따돌린 완벽한 우승을 기록한 수퍼루키는 바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여자부 개인전, 단체전 우승을 휩쓴 유소연(18·하이마트)이다. 2006년 아시안게임은 한국 골프가 남녀 개인전, 단체전 금메달을 싹쓸이하며 처음으로 골프 전 종목을 석권하는 신화를 기록한 때다. 골프 종목의 선전에 힘입어 한국은 아시안게임 종합 2위에 올랐다. 당시 유소연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이후 16년 만에 한국의 여자부 개인전 우승 기록을 세우며 골프 전 종목 석권에 크게 기여했다. 아마추어 시절의 신화, 프로 데뷔전의 영광은 5월 국내 최대의 메이저 대회로 이어졌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한국여자오픈에서 유소연은 신지애와 연장 3번홀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며 국내 최정상의 선수와 대등한 기량을 과시했다. 한국여자오픈 직후 시즌 상금랭킹은 신지애에 이어 2위, 신인왕 포인트는 1위를 기록중이다. 머지않아 자신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고하는 이 꿈 많은 여고생이 개막전 우승을 꿈꾼 동기와 동계훈련 중 참가했던 미국 3부 투어 경기의 기억, 보양식으로 즐겨먹는 낙지요리,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이야기한다. 메이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신지애와 연장전까지 치르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승을 놓친 아쉬움이 컸을 것 같은데. 준우승에 만족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후회는 없다. 어느 대회보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진행한 경기였기 때문이다. 연장에서 패했지만 국내 최고 선수인 지애 언니와 우승경쟁을 벌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승에는 때가 있다. 주변에서 나를 ‘특급신인’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지애를 2타 차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17번홀 세컨드샷 미스로 동타를 허용했다. 어프로치를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세컨드샷 지점은 오르막 경사지였다. 그린이 딱딱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굴리는 어프로치를 구사하려고 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띄우는 어프로치를 구사했고 이것이 실패의 원인이 됐다. 그리고 라인을 잘못 읽으면서 퍼팅 미스로 이어졌고 결국 지애 언니에게 추격의 발판을 제공한 셈이 됐다. 그 홀의 실수가 많이 아쉬웠을 듯하다. 파세이브가 가능한 분위기에서 보기를 했다. 프로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실력차라는 것을 인정한다. 코스 매니지먼트 능력에서도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만약 굴리는 어프로치샷을 했다면 충분히 파를 잡았을 것이고 지금보다는 덜 아쉬웠을 것이다. 어프로치 상황에서 고민할 때 캐디의 조언을 구하지는 않았나. 원래 캐디에게 의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판단해서 모든 걸 결정하기 때문에 경기 결과도 모두 내 몫이다.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이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파 퍼팅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라인을 제대로 못 읽은 상태로 스트로크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기 중 아무리 압박감이 느껴져도 불안하지는 않다. 이제는 그런 상황도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지애와 함께 플레이하는 데 대한 부담은 없었나? 주니어 시절 2년간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내고, 중학교 3학년이던 2005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지애 언니는 2005년 국가대표로 함께 활동하면서부터 나의 역할모델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최종라운드 전날 밤, 지애 언니와 우승경쟁을 벌이게 되어 많이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경기를 시작한 후에는 의외로 차분하게 내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플레이할 수 있었기에 나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신지애와 연장전을 치르며 3번째 홀에서 볼이 그린에서 미끄러지며 승부가 갈렸는데. 그린이 딱딱했고 스핀을 주는 샷을 했다. 어프로치로 칩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세게 친 것이 문제였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주눅 들지 않고 플레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막전에서 KLPGA 투어 사상 최초로 데뷔전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아마추어 선수에서 곧바로 정규투어에 합류했는데 그런 결과를 예상했나. 아니, 데뷔전 우승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경기를 준비하면서 샷과 퍼팅이 잘 안 됐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우승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대회가 열리기 전 기자들로부터 “김영주골프여자오픈이 열리는 제피로스 골프장이 지난해 김경태가 데뷔전 우승을 기록한 곳인데 본인도 개막전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시안게임에 함께 출전했던 김경태 선배가 데뷔전 우승을 기록한 골프장에서 내가 프로 데뷔전을 치른다고 생각하니 신기했고, 개막전에 대한 각오가 달라진 것 같다. 그 질문으로 인해 우승을 마음먹게 되었다는 말인가? 평소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는데 그날 일기를 쓰면서 그 질문을 다시 생각해봤다. 김경태 선배처럼 데뷔전 우승을 기록하게 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행운이 따라 우승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다. 신지애가 개막전 경기를 끝낸 후 포옹해주며 “이제 나의 시대는 갔네”라고 이야기했다.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 겨울 두 달간의 미국 전지훈련을 통해 샷이 정교해지고 스윙리듬과 템포가 좋아진 덕분이다. 전지훈련을 통해 루키시즌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 그리고 대회 기간 중 TV를 통해 재방송을 보면서 코스공략을 안정적으로 펼치기 위해 공부했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전지훈련은 어디서 어떻게 소화했나. 미국 애리조나에서 5주, 캘리포니아에서 2주 동안 머물며 스윙을 다듬고 3부 투어 대회에 출전해 경기감각을 익혔다. 현지 코치인 독일인 조 애리는 동양인의 스윙에 맞게 합리적으로 보완해줬다. 나예진 등 2명이 동행했고 현지에 홈스테이로 있을 집을 구해 머물렀다. 언어를 비롯해 미국 현지에서 생활은 어땠나. 간단한 생활영어는 익혀서 갔고(그래서 요즘 지애 언니의 캐디와도 곧잘 대화를 나눈다) 소속사인 IB스포츠의 매니지먼트 담당자가 동행해 언어를 비롯해 전반적인 부분을 지원해줬다. 또한, 홈스테이로 머문 집의 주인 내외가 모두 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주머니는 농구경기의 심판관으로 일하고, 아저씨는 골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신문에 나온 골프관련 내용을 스크랩하거나 TV에서 방송되는 좋은 레슨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주는 등 이것저것 챙겨줬다. 내가 3부 투어 3차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주인 아저씨가 손수 캐디백을 메주기도 했다. 3부 투어 경기는 어땠나. 현지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3부 투어이긴 했지만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므로 1부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나 퓨처스 투어 출신 등 20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내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지만 긴장되는 상황도 없지 않았다. 캐디를 맡아준 아저씨는 경기 중의 심리상태에 대해서도 잘 아는지 그럴 때마다 “휘파람을 한 번 불어보라”는 식으로 조언하며 긴장을 풀어줬다. 그 경기에서 우승하면서 지난해보다 자신이 붙었고 이제 정말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데뷔 첫승을 신고했기 때문에 각오가 남다를 것 같은데. 한 번 우승했기 때문인지 우승 욕심이 계속 생기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경기 전에 노력한 만큼만 이루자’는 생각으로 임한다. 지금의 페이스대로 나간다면 절반 이상은 톱10에 진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행운이 온다면 상금왕도 해보고 싶다. 한국여자오픈 첫날 줄리 잉스터와 같은 조로 플레이했다. LPGA 투어 선수와 함께 플레이한 소감은. 지난해 크리스티 커와도 함께 플레이한 적이 있었는데 여자 선수들의 우상인 줄리 잉스터와 같은 조로 플레이하게 돼 기쁘게 생각했다. 하지만 잉스터는 한국여자오픈에서 플레이 속도가 미국보다 느려 경기를 힘들게 진행했다. 그녀가 “한국에서는 매 대회마다 이러느냐”, “미국에서는 안 그렇다”고 지적할 때마다 지애 언니와 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세계적인 선수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건 유쾌하지 못했다. 대회 최종일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았나. 아마추어 시절에도 외국 대회에 출전하면 비가 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한 대회를 마치면 그 다음 월요일에는 꼭 쉬어주는데 이번에도 그랬기 때문에 무리가 없었다. 자신의 기량에서 자신있는 부분과, 취약한 부분은 무엇인가. 쇼트 아이언에는 정말 자신 있다. 그린에서 100야드 거리는 마음대로 공략할 수 있다. 그러나 50야드 이내의 쇼트 게임에서는 아직 부족해서 어프로치샷은 미스가 있는 편이다. 기량만큼 매너도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매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가. 매너는 선수로서의 자질과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 시절에도 실력보다 사람됨이 더 중요하다고 배웠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갤러리와 대화를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의류나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나중에 패션 관련 사업을 운영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플레이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가. 그날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야 볼도 잘 맞는다. 그래서 시합에 출전하기 전날 밤에 엄마와 상의해서 대회기간 동안 입을 옷을 정리해둔다. 리본을 비롯한 헤어 액세서리는 의상과 컬러를 맞추고, 머리가 뻗쳤다면 땋아서 묶어야만 경기에 집중이 잘 된다. 골프웨어는 내가 직접 매장에 가서 골라온다. 파란색을 좋아해 자주 입는 편이다. 대회 수가 늘어나 여름 시즌에도 경기가 이어지면서 체력관리가 쉽지 않을 듯하다. 여름철 특별히 챙기는 보양식이 있다면. 주변에서는 흑염소나 개소주, 자라, 장어 등을 먹는 경우를 봤다. 선수들의 70~80%는 보양식을 먹는다. 뱀탕을 먹는 선수도 내가 아는 경우만 5명은 된다. 쉽게 먹지 못할 것 같은 건강식은 부모님이 속여서 먹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쓰러진 소도 일으킨다’는 낙지를 좋아해서 매운 낙지요리를 즐겨먹는다. 트레이너도 고기보다 생선과 야채를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어떻게 하고 있나. 비시즌에는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시즌 중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다. 지난 겨울에도 복부와 엉덩이 근육을 집중적으로 단련했는데, 미국의 코치도 복부와 엉덩이가 장타에 영향을 준다고 조언했다. 트레이닝을 자주 하지 못하는 시즌 중에는 짐볼을 가지고 다니며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한다. 바이올린과 골프를 사이에 두고 진로를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 골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연습을 하면 하는 만큼 곧바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골프다. 물론 바이올린 연주도 연습을 하면 실력이 늘지만 피드백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샷을 연습해서 내 실력으로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다. 인생의 두 갈래 길에서 하나를 선택했고 어느 정도는 성공을 이루어가고 있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나. 여전히 골프가 바이올린보다 매력적이다. 과거에는 그저 스코어에만 매달렸다면 최근 1~2년 사이에 골프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게 됐다. 플레이하면서도 주변의 산과 코스의 풍경이 보이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적당한 긴장과 함께 여유를 갖고 즐길 수 있어 골프가 더 좋아졌다. 나는 골프를 선택했지만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고 나도 가끔 취미삼아 연주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익힌 음악적 감각이 골프에도 도움이 되는가. 리듬과 템포를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골프 선수에게 스윙이 크게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다. 스윙 템포를 잃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 면에서 음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여겨진다. 신인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고 앞으로 더 큰 무대로 진출할 텐데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아마추어 때의 계획은 국내에서 2년 정도 활동하고 일본무대를 거쳐 미국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 투어의 대회 수가 늘어났고, 상금규모도 커졌기 때문에 굳이 일본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래도 일본 투어가 우리보다 발전해있고 국토도 넓기 때문에 미국 진출에 대비해 경험할 필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시간을 두고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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