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노조 손배소판결의 뒤안
곽경호기자 kkh1108@sed.co.kr
19일 울산지법은 파업과 관련해 다소 새로운 판결을 내려 주목받았다.
파업기간 중 발생한 회사측의 피해액에 대해 파업을 주도한 노조원들 개개인이 회사 피해 부분의 일정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다. 그동안 노조에 대한 배상액을 명시한 판결은 있었으나 당사자들에게까지 배상규모를 구체적으로 산정한 예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태광산업㈜은 지난 2002년 발생한 파업사태로 막대한 손실(회사측 추산 1,600억여원)을 입었다며 당시 파업을 주도한 노조간부 등을 상대로 지난해 7월 총 26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었다.
재판부는 이날 노조원 38명 중 19명에 대해 "회사측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점이 인정된다"며 "일인당 약 1,000만원씩을 회사측에 지불하라"고 판시했다.
태광산업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는 "노조원 개인에게 손배책임을 인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이날 법정을 나서는 해고근로자 중 한사람은 기자에게 "3년여 동안 온 가족이 눈물의 세월이었습니다. 오로지 회사에 다시 출근하겠다는 일념뿐이었는데 남은 건 평생 갚아도 끝이 없을 손해 배상액이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2001년 격렬한 노사분규로 전국적 이목을 받았던 태광산업. 800여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중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원직 복직 투쟁에 나선 최후의 38명은 "제대로 일하고 싶다"는 근로권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돌아온건 해고자로서는 적지않은 손해배상액뿐이었다.
사측은 "이들의 과격한 파업투쟁으로 전조합원의 생계터전이 위협받은 점을 지켜만 볼 수 없어 최소한의 책임을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회사에 남겨진 1,000여 직원들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기자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그러나 노사 양측은 이번 손배사건을 계기로 서로가 씻을 수 없는 피해자가 되고 만 느낌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다.
두산중공업에서 분신한 배달호씨나 고공 타워크레인에서 쓸쓸히 목을 맨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손배소의 중압감을 견디다 못해 귀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현 시점에서 노동계든, 사용자든, 정부든 누구 하나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할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다.
근로자나, 사측이나 모두 상생하려는 노력을 펼쳐보여 할 시점이 아닐까.
입력시간 : 2004-05-19 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