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박자혜 '7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국가보훈처는 일제시대 3ㆍ1운동을 독려하고 나석주 의사 폭파 의거를 도운 박자혜(1895~1943ㆍ사진)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1895년 12월 경기도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린 나이에 입궁해 10여 년간 궁중생활을 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궁녀 신분을 벗어난 후 숙명여학교 기예과에 입학해 근대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사립 조산부양성소를 거쳐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조선총독부의원 산부인과의 간호부에 취업했다.
1919년 간호부 근무 당시 3ㆍ1만세 운동으로 병원에 부상 환자들이 줄을 잇자 울분을 느끼고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들을 모아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한편 직접 3ㆍ1만세운동에 참여하고자 ‘간우회’를 조직, 같은 병원 의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고 간호사들에게 동맹파업에 참여할 것을 주창했다. 선생은 이 때문에 일경에 체포됐다가 병원장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이후 베이징으로 건너가 연경대학 의예과에 입학한 선생은 1920년 봄 평생의 반려자인 신채호 선생을 만나 결혼했고 이듬해 첫 아들 수범을 출산했다.
그러나 1922년 둘째를 임신한 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남편과 헤어져 귀국했다. 선생은 중국에 있던 신채호 선생과 연락하면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한국을 착취할 목적으로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殖産銀行)에 대한 나석주 의사의 폭탄 의거 당시에는 서울의 길 안내를 자원하기도 했다. 신채호 선생이 체포돼 1936년 2월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옥바라지는 물론 자녀 교육과 생계를 모두 떠맡았다.
신채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둘째 아들 두범 마저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했고 선생 역시 유일한 희망인 조국의 독립도 보지 못한 채 1943년 10월 병마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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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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