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 가족도 외면한 마지막 길…늘어난 무연고자 장례

서울승화원서 50대 이모씨 장례

자립 도왔던 시민단체 등만 배웅

유족이 시신 인수 거부한 사망자

지난해에만 4000여명 넘어

장사법 개정됐지만 현실적 한계

"장례 주관자 선정 등 국가 지원을"

2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이모 씨의 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채민석 기자2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 이모 씨의 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채민석 기자




고아원을 옮기는 날이 곧 자신의 생일인 남자가 있었다. 그가 가진 4개의 생일 중 단 하루도 그가 실제 태어난 날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청계천을 떠돌며 껌을 팔거나 소매치기를 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20대에 접어들어 사업을 시작했지만, 성공은 그를 외면했고 감당하기 힘든 빚만 남았다. 몇 차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고시원을 전전하며 외로워지길 택했다.



2024년 5월 22일. 그는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고시원에서 오랜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모든 것이 ‘미상’으로 남은 삶을 대변하듯, 그의 사망일자 뒤에는 ‘추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에게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은 ‘이○○’이라는 이름 하나였다.

2일 오후에 방문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소재의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무연고 사망자’ 이 모씨의 장례절차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전용 빈소인 ‘그리다’에는 이 씨의 자립을 도왔던 시민단체 관계자와 구의원 등 11명이 참석해 이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 씨의 장례에는 생전 이 씨와 연락을 나누지 않았던 가족들도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씨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장례는 결국 무연고 사망자 장례로 진행됐고, 이 씨의 유골은 또 다른 무연고 사망자인 박모 씨의 유골과 함께 용인 평온의숲 유택동산에 산골(散骨, 유골을 산이나 강, 바다 따위에 뿌리는 일)됐다. 이 씨와 유족들에게 이 씨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은 이유에 물었지만, “가족을 힘들게 했다”는 말 외에는 끝내 언급하길 거부했다.

이날 장례에 참석한 마을 활동가 안경애 씨는 이 씨와 생전에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계층을 대상으로 사회복지 나눔 축제를 진행할 당시 이 씨를 초대했었고, 이 씨도 활발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라며 “인근 교회에 다니면서 김장 봉사에 참석하는 등 삶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망 소식을 듣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 채민석 기자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공영장례 빈소 ‘그리다’. 채민석 기자





홀로 세상을 등진 무연고 사망자는 이 씨 뿐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무연고 사망자 현황’ 통계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 2019년 2543명이던 무연고 사망자는 2020년 3017명, 2021년 34987명, 2022년 4755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5324명을 기록하며 5년 전 대비 109.3% 증가한 수준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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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는 경우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로 나뉜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로, 지난해에 사망한 무연고자 5324명 중 4043명(75.9%)이 해당했다.

‘미상 및 기타’로 분류되는 주민등록번호 또는 성별 파악이 불가능한 신원불상자는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다 지난해 91명을 기록, 전년(87명) 대비 소폭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보건복지부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지방자치단체별 장례지원 편차를 줄이기 위해 지난 2월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표준안’을 마련해 배포했다. 표준조례안을 통해 보건복지부는 공영장례 지원대상 및 지원방법 등을 구체화하고, 장사법 개정안에 따른 장례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빈소설치, 제물상차림, 조문, 헌화 등 장례의식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내용에 명시했다.

지난해 3월 장사법이 개정되면서 가족이 아닌 유언 방식으로 지정한 자도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망한 뒤 평균 30일가량 소요되는 법적 연고자 파악이 끝난 뒤에야 가능한 절차기 때문이다.

이날 장례식에 참석한 김은하 서울시 동작구의회 의원은 “무연고자의 유언에 따라 즉시 장례 주관자를 선정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장례가 진행된다면 사망자의 존엄성을 더욱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에 앞서 이 씨가 사업 실패 등으로 재기하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았던 만큼 선별복지 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채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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