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림가 3父子의 산림입국의 꿈 끝내 부러지나30년간 전재산 쏟은 '장태산 휴양림' 소유권 잃어
30년 동안 전재산을 투자해 국내 최초의 민간휴양림을 가꾼 독림가 3부자의 꿈이 좌절될 위기를 맞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전시 장태산 25만평을 아름다운 휴양림으로 일궈 낸 독림가 임창봉(81)옹과 재문(53), 재길(49)씨 3부자는 현재 휴양림 소유권을 잃고 대전시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 누구보다도 착잡한 심정으로 식목일의 아침을 맞고 있다.
장태산 휴양림은 한국전쟁이후 건설업으로 돈을 모은 임옹이 지난 73년 '나무를 심고 가꾸며 살아야겠다'며 산을 매입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임옹은 초창기 낙엽송과 잣나무 등을 심었고 일본이 오동나무 수입을 장려한다는 소리에 오동나무까지 심기도 했다. 이후 '메타세궈이아'3만주를 연차적으로 심는 등 별볼일 없던 산을 아름다운 동산으로 가꾸어 나갔다.
이처럼 나무와 함께 생활하면서 산에 빠지기 시작한 임옹은 서울에서 대학재학중인 큰 아들 재문씨를 장태산으로 불러들였다.
임옹과 재문씨는 칡넝쿨 투성이었던 장태산에 300억원이나 되는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고 20년 노력 끝에 나무 높이 25m이상이나 되는 거목들이 질서있게 자리잡은 장태산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산의 가치가 인정되기 시작했고 장태산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정부가 이곳을 휴양림으로 지정ㆍ고시하는데 이르렀고 이들 부자는 이곳에 숙박시설과 교육시설을 마련, 92년 전국 최초의 민간휴양림을 선보였다.
임옹은 휴양림 개장과 동시에 둘째 아들 재길씨까지 불러들여 3부자가 나무 가꾸는 일에 매달렸다. 산림청은 임옹과 재문ㆍ재길씨의 이 같은 업적을 높이 평가해 이들을 독림가로 지정 했다.
3부자의 땀으로 20년 이상 자란 거목들로 인해 97년에는 연간 방문객 30만명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고 이렇게 가꾸어진 장태산 휴양림은 '대전 8경'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들 3부자는 보다 많은 이용객들이 자연과의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설확충에 나섰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은 이들은 꿈에도 몰랐다. 보다 편리하고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는 휴양림을 만들기 위해 빌린 돈이 때마침 불어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함께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 재산을 팔아가며 버텼으나 빌린 돈을 갚을 길이 없었고 끝내 경매에 부쳐져 대전시가 낙찰자로 결정됐다.
이제 이들 3부자의 장태산 휴양림과의 인연도 끊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두 아들은 병석에 누운 임옹을 지키며 지금도 나무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임옹의 아름다운 뜻이 영원이 빛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장태산을 떠나는 순간까지 나무 돌보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톱을 들고 나선다.
재문씨는 "산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독림가와 임업후계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될 때만이 우리의 국토가 더욱 푸르고 아름답게 될 것"이라며 "장태산 휴양림이 국민들과 후손들에게 봉사하는 자연교육장으로 영원히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전=박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