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국민연금의 뉴욕사무소 개소식 현장. 비크람 판디트 씨티그룹 회장과 개리 D 콘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사장(COO) 등 월가를 주름잡는 거물급 인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한국의 국민연금 뉴욕사무소 개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내용의 축하 전문까지 보냈다.
이 장면은 전세계에서 기금 운용 규모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민연금의 높은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금 적립금이 수백조원에 육박하는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을 어느 증권ㆍ운용업계에 맡기냐에 따라 수조원 내지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수수료 수입의 향방이 갈리는 터라 국민연금을 향한 구애의 손길은 국내ㆍ국외가 따로 없다. 국민연금이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슈퍼 갑'으로 통하는 이유다.
그런데 슈퍼 갑 국민연금이 몹쓸 짓을 했다. 국내 투자에 사용될 기금을 맡길 증권사를 국민연금 출신자가 재직하는 증권사에 높은 점수를 매겨 기금을 몰아줬다. 또한 국민연금이 저지른 부정 행위를 국회에 고발한 증권사는 기금 운용사에서 탈락시켰다.
국민연금의 이런 몹쓸 짓은 증권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연금을 상대하는 증권계 법인영업본부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들을 만족시킬 접대ㆍ향응이라는 씁쓸한 얘기도 있다. 국민연금이 지닌 막강한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맡긴 연금인데 국민 돈을 가지고 이런 부정행위를 자행하고 있으니 이들의 도덕적 불감증에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권력을 오용하는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강화에 나선다니 걱정이 앞선다.
물론 국내에서 대기업을 견제할 만한 수단이 많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주주권 행사가 기본 권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는 환영할 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돈으로 제 잇속만 챙기는 집단에 기업 견제를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지 않을까. 생선(기업)을 견제하기 전에 고양이(국민연금)의 식탐(권력욕)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