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5월 11일] 사장님과 사모님

"사모님들." 강연 도중 무심코 흘러나온 호칭에 청중들이 순간 술렁인다. 대형 콘퍼런스 룸을 가득 메우며 강연에 귀 기울기고 있던 400여명의 청중은 전국에서 경영연수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여성 경제인들. 한 해에 적게는 수억에서 수백억대까지 매출을 올리는 사장님 들이다. "우리가 밥하다가 나온 줄 아시나 보네." 강의를 듣고 있던 P 사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성 기업이 보기 드물던 지난 1960년대에 창업해 40년 이상 제조업체를 이끌어 오고 있는 그는 생활용품 제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원로격 여성 경제인이다. 그뿐 아니다. 7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주관한 '2009 전국 여성 최고경영자(CEO) 경영연수'에 참석한 여성 경제인들은 많건 적건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우리 경제 발전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는 사회의 리더들이다. 이날 강연자의 입에서 나온 "사모님들"이라는 한 마디는 물론 사소한 말실수에 불과하다.하지만 그 한 마디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깊게 박혀 있는 여성 경제인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한 여성 CEO는 "여성 경제인들을 개별 사업체를 거느리는 여성이라기보다는 '부인들' 또는 '아줌마'로 보는 인식은 지금도 여전하다"며 "기업인에 대한 예우 역시 남성 CEO와는 큰 차이가 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사장이 여성이라고 하면 금융권에서도 불신의 안경을 끼고 본다는 하소연이 많다. 여성 경제인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일까. 우리나라 여성 기업은 유독 영세기업이 많다고 한다. 지난해에 발표된 국제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기업의 비중은 7%로 선진국들과 비슷하지만 기업규모는 5인 이하 소기업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제록스의 앤 멀케이나 펩시의 인드라 누이 등 걸출한 여성 CEO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이 같은 현실 속에 최근 여성 경제인의 경영여건 개선과 지원을 앞세운 단체 설립은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에는 '여성경제포럼'이, 이달 들어서는 '한국여성경제진흥원'이 여성 CEO 지원 및 여성들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내걸고 잇달아 출범했다. 이들 단체를 포함해 이미 상당수에 달하는 여성관련 단체의 활동은 물론 여성 경제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 경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다. '사장님'이 '사모님'으로 불리는 사회에서 여성 경제인이 날개를 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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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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