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2014 신년기획 이노베이션 코리아] ㈜ 대한민국 혁신해야 산다 <1> 왜 다시 혁신인가 - 소프트웨어 1부

정책·정치 불신에 떼법문화 만연 … 후진형 시스템 걷어내야

공기업 개혁·서비스 선진화 등 불신 풍조에 급제동 일쑤

중진국 함정 벗어나려면 고질적 병폐 치유·신뢰 살려야


공기업 개혁, 서비스 산업 선진화, 중산층 복원, 고용 미스매치(수급 불일치) 해소….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에 시동을 다시 걸기 위해 정부가 역점을 둬온 정책들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어느 정부도 이루지 못했다. 이들 정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가 작용해왔다. 신뢰의 소프트웨어가 작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 불신의 풍조가 하나의 사회문화처럼 확산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당장 공공 서비스 경쟁체제 도입, 교육 및 의료의 영리사업 허용 확대, 사업서비스산업 규제 개선 등을 추진하려는 정부정책들은 이해집단의 '떼법'과 불신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사회혁신(리노베이션·renovation)을 가로막는 불신의 한국병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한국 경제를 재부팅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불신 수준 짚어보니=신뢰 저하는 객관적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바로미터'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행정·입법·사법부 등 통치기관 전체의 신뢰도는 지난 1996년 38%였지만 2003년에는 7%, 2011년에는 6%로 급락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조사를 봐도 2012년 우리나라의 정책결정 투명성 순위는 총 148개 조사 대상국 중 137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결과나 성과보다는 절차의 투명성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부의 신뢰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박종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설사 가계의 경제형편이 어려워지고 정책 자체에 대해 국민적 이견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한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유지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및 정책 현실은 아직도 절차의 투명성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달 국회의 상황만 봐도 그렇다. 당시 예산조정소위원들은 구랍 10일부터야 뒤늦게 소위를 가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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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도 제때 안건들을 다 처리하지 못해 그달 12일에는 무려 1,700여건에 달하는 증액안건들의 공개심사를 포기하고 양당 간사에게 합의를 보도록 일임해버렸다. 수조원에 이르는 예산안 증액건을 양당 지도부의 밀실협상에 떠넘겨버린 셈인데 이는 거의 매년 관행처럼 반복된 지 오래다.

정부의 말 바꾸기도 절차의 투명성에 흠집을 내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가 최대 업적이라고 내세웠던 4대강 사업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뀐 후 "총체적 부실사업"으로 낙인찍히는 모습은 오락가락하는 정책의 슬픈 자화상이다.

◇형식보다는 내용의 투명성 이뤄야=물론 정부·국회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지 과거보다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의사결정 절차를 공정하게 꾸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형식의 투명성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책결정 시한에 임박해 요식적으로 공청회를 열고 참석 패널이나 방청객도 정부에 우호적인 집단·단체로 의도적으로 조정하거나 각종 정책 관련 위원회나 협의회를 구성할 때 어용 인사, 낙하산 인사를 위주로 끼워넣는 방식처럼 한층 교묘하게 '투명성을 위장'하는 관행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사법 당국 역시 공개변론·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는 등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재판에서 판결 방향은 이미 공판의 배후에서 검찰-판사-변호인 간 비공개협상으로 짜 맞춰지고 있다는 불신이 사회적으로 팽배하다.

행정전문가들은 정책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보다 정보공개에 좀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e나라지표·국가통계포털·알리오 등 중구난방식으로 행정자료·통계가 공개되고 그마저도 상당수 데이터가 수개월, 수년째 업데이트되지 않는 방식이라면 어렵게 예산과 인력을 들여 자료를 공개해도 국민의 체감도는 높아지지 않는다.

중요정책 관련 각종 협의회·위원회·기구 등의 인선 기준과 절차·결과·활동내역(출석부, 회의 속기록 등) 등을 공개해 '밀실정책' 의혹을 방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국회의 경우 민생과 관련이 높은 예결위의 심사안건에 대해 간사 일임 등의 밀실협상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간사·위원장에 대한 안건 일임요건을 특정한 경우로만 제한하는 규정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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