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리 터질때마다 ‘희생양’인가/수난의 자리… 은행장

◎구속 모두 11명… 72년 홍용희 외환은행장 ‘1호’/어쩔수없는 ‘배경의 힘’은 항상 드러나지 않아80년대 초반 이철희·장령자사건이 우리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었을 무렵 한 시중은행장은 자기 처지를 『눈을 감고 지뢰밭을 걷는 기분』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 최근 한보사태로 검찰소환을 눈앞에 둔 은행장들이나 어렵사리 격랑을 피해있는 은행장들이나 마찬가지 심정일 수 밖에 없다. 금융이 경제개발과 보조를 맞추며 어느 정도 틀을 갖추기 시작한 70년대 이래 은행장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목숨에 불과했다. 특히 대형 부정,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은행장들은 가장 먼저 희생양으로 몰렸고 그럴수록 한켠에선 『언제 은행장 권한으로 대출이 나간적이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우리 금융사에서 현직 은행장 구속은 모두 9차례, 10명이 희생됐다. 노동부장관으로 영전했다가 뒤늦게 구속된 이형구 전 산은총재까지 합치면 모두 11명으로 늘어난다. 구속은행장 1호는 72년 3월 외환은행 미 로스앤젤레스(LA)지점 부정대출사건에 연루된 홍용희 외환은행장. 당시 홍행장은 외환은행 LA지점이 재미실업가 김모씨에 6백30만달러의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2백만원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법정에서 징역 5년, 3천3백80만원 추징 등의 선고를 받은 홍행장은 개인적으로 8천만원짜리 예금을 갖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두번째 구속된 사람은 7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영복 무역사기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였다. 초대 국민은행장을 지낸 금융계 거물 정우창 중소기업은행장은 8백50만원의 뇌물로 몰락했다. 당시 비슷한 처지였던 심병식 서울은행장도 비록 구속만은 면했지만 자리를 지킬 수는 없었다. 79년 율산파동은 이후 대형 금융사고 처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율산파동은 「무서운 아이들」의 겁없는 성장과정에서 돌출한 전형적인 금융사고. 당시 홍윤섭 서울신탁은행장은 업무상배임혐의로 구속됐고 김정호 한일은행장 등 3명의 은행장이 사임하는 등 파장이 엄청났다. 홍행장은 수뢰혐의를 받지않았지만 부실대출에 대한 배임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신흥재벌의 갑작스런 몰락,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정대출시비 등은 이후 은행장 구속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은행권이 은행장의 힘으로 그런 규모의 대출이 가능했겠느냐며 반발했지만 은행장의 힘을 누를 수 있는 뭔가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채 종결됐다. 82년 이철희·장영자사건은 한꺼번에 두명의 은행장을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다. 공덕종 상업은행장과 임재수 조흥은행장은 사건 직후 각각 5천만원과 1억5천만원을 뇌물로 받은 혐의를 받아 구속됐으나 이후 대법원 최종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임행장의 뒤를 이어 조흥은행장에 취임한 이헌승 행장은 불과 1년뒤 터진 영동개발 어음사기 사건으로 역시 구속됐다. 이행장의 뇌물수수액은 2억원. 83년이후 근 10여년간 잠잠했던 은행권의 수난은 93년 안영모동화은행장의 구속을 계기로 재연됐다. 안행장은 행장연임을 위한 로비자금을 불법 조성했다가 들통나 불명예를 안았다. 95년이후 은행장 구속은 금융사고 때마다 연례행사로 되풀이됐다. 95년 덕산그룹사태와 관련, 뇌물수수혐의로 봉종현장기신용은행장이 구속됐고 이형구 노동부장관이 산업은행총재시절의 대출비리가 드러나 역시 법정에 섰다. 뒤이어 96년 5월 효산그룹 대출비리 사건으로 이철수 제일은행장이, 11월엔 손홍균 서울은행장이 국제밸브 등에 대한 대출비리로 각각 구속됐다. 은행장 구속사건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은행장 조차 어쩔 수 없는 힘이 작용했다는게 정설이다. 이는 금융권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으레 하는 말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은행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실로 통해왔다. 금융사고의 이면에 자리잡은 대출비리와 뇌물수수, 그에 따른 은행장 구속은 72년이후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다. 금융사고의 마무리를 위해서는 은행장 구속이 당연시됐고 은행장 뒤에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누군가」는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눈감고 지뢰밭을 걸어왔던 수많은 은행장들이 갖가지 사고의 속죄양으로 전락했지만 속죄양을 요구했던 금융계 안팎의 풍토는 여전한 셈이다.<손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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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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