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저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2일 사퇴를 선언하는 자리를 통해 이 같은 소회를 나타냈다.
하지만 삼성맨들 가운데 이 회장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오늘날의 삼성은 이 회장이 20년 전에 세운 비전을 상당 부분 달성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놀랍게 변신했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선친 이병철 창업주가 타계한 직후인 지난 1987년 12월. 취임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제2 창업’을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이 제시한 비전은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도전. “21세기에는 세계 일류가 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이 회장의 지론이었다.
삼성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충격을 준 프랑크푸르트선언이 등장한 것은 93년. 이 회장은 새로운 논리, 새로운 문화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임직원들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조리 바꾸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이 회장의 ‘신경영’ 화두다. 당시만 해도 직장인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야근문화를 바꿔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재충전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도 이맘때다.
이 회장의 경영감각은 특히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부분에서 탁월했다는 평가다. 특히 내수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만을 내다보고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것은 현재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는 바탕이 됐다.
아울러 제당ㆍ제분ㆍ섬유ㆍ백화점 등 선대 회장 시절의 핵심 사업들을 과감하게 계열분리 또는 비중축소하고 전자ㆍ화학ㆍ중공업 등 수출산업에 집중한 것도 이 회장의 탁월한 감각이 드러난 의사결정으로 평가된다.
마케팅 부문에서는 96년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 위원에 취임하고 올림픽을 후원해 국제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