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8일] 동양척식회사

돈과 수탈행정의 힘은 총칼보다 무서웠다. 1908년 12월28일, 일제가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농업사회 조선의 근간을 갉아먹고 무너뜨렸다. 영국 동인도회사를 모델로 설립된 동척의 납입자본금은 1,000만원. 요즘 가치로는 1,950억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대한제국 황실도 토지 5,300만여평을 현물출자, 지분 30%를 받았다. 동척은 이듬해 영업을 시작했지만 조선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동척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토지조사 사업. 일제는 1910년부터 8년간 전국토를 낱낱이 파헤쳐 임자 없는 땅을 무조건 동척에 귀속시켰다. 자영농민들도 땅을 빼앗겼다. 근대적 토지 소유개념이 부족한데다 일제에 협력하기가 싫어서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척은 순식간에 조선 농지의 40%를 차지해버렸다. 거대 지주 동척의 수탈은 교묘하고 가혹했다. 농민들은 비료비와 수리조합비까지 합쳐 소출의 80%를 소작료로 물어야 했다. 소작조건도 1년 갱신으로 단축해 소작인이 지주에게 굴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생산된 쌀은 일본으로 보내졌다. 1919년 조선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0.68섬. 일본인 1.14섬의 절반에 그쳤다. 배 고픈 농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등졌다. 1910년 이후 15년간 만주로 이주한 농민만 30만명에 달한다. 조선 농부들이 사라진 자리는 일본인들이 대신 들어앉았다. 동척은 1만여호의 일본 농가를 유치해 조선 농촌의 일본화를 꾀하는 등 일제 36년 내내 농촌을 짜냈다. 광복 60년을 지나는 오늘날도 동척의 잔재는 여기저기에 널렸다. 독도 면적의 350배에 달하는 땅이 아직까지 조선총독부나 동척ㆍ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다. 친일파 후손의 조상 땅 찾기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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