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한민국 품격을 높여라] <4·끝> 각계 인사 제언

성숙한 담론·토론문화 만들기, 지도층·어른이 앞장서야<br>인터넷·SNS 규제 앞서 저질문화 자정 노력<br>학교·가정에선 제대로 된 인성 함양 교육을<br>지식인들도 잘못된 언행 꾸짖는 풍토돼야


우리나라가 국가의 품격을 높여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명실상부한 세계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은 지난 총선에서 불거진 막말 파문 등을 넘어 국가의 품격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정치인ㆍ지식인 등 지도층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 이상 특정 목표를 위한 저급한 발언을 남발하거나 이에 침묵하지 말고 국가적 담론과 토론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 질 낮은 담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는 개인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학계와 경제계ㆍ문화계 등 각계의 원로와 전문가들에게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에 대한 제언을 들어본다.

# 익명성 앞세운 인터넷문화 개선돼야

오피니언 리더들은 최근 국가의 품격을 훼손하는 언행들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계층을 불문하고 높아지는 사회적 불만들이 익명성을 앞세운 인터넷 문화와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대중들은 분노의 심리에 가득 차 있는 듯하며 재산과 학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경제·사회·정치적으로 부당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 보인다" 면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꼼수다' 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막말 또는 B급 문화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막말을 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억눌린 것을 대신 풀어주는 것과 같은 '카타르시스 효과' 를 느낀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하지만 막말의 수위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고 인터넷 공간과 상승작용을 하면서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강조되고 있다" 며 "그동안 막말에 대해 '시원하다' 며 긍정적 반응을 보이던 대중들은 이제 막말의 홍수에 지쳐서 점차 돌아서고 있다" 고 진단했다.

혜민스님은 "예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은 아주 가까운 지인들끼리 사석에서나 할 수 있는 거친 말들이 주류 언론 및 SNS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들을 통해서 총선 기간 동안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재조명됐다는 점" 이라며 "결국 개인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에서 나오는 곱지 못한 말들이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여과 없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 같다" 고 평가했다. 혜민스님은 또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거나 존중하는 것에 약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 지적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요즘 인터넷이 활발하고 SNS도 영향력이 커지면서 자기표현의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 며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남들보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커지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가정과 학교 등에서 사회적 자정기능이 사라진 점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품격이 떨어지는 언행들이 늘어나는 이유로 꼽았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과거에는 가정과 학교 등 사회의 단위집단에서 자정기능이 있었지만 최근 가정은 대화가 없고 학교는 교권이 무너지면서 복합적으로 자정기능이 없어졌다" 며 "한마디로 잘못됐다고 꾸짖고 바로잡아주는 어른이 없는 상황" 이라고 분석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아직 우리 문화의 성숙도가 낮고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한 것 같다" 며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 건전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나 인성 함양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원인" 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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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과 개인, 자정노력 기울여야

최근 경박한 발언과 저속한 욕설 등이 사회적으로 확산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시청률을 위해 저속한 발언이 난무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양산한데다 사후적으로 저급 문화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공론화에도 소홀했기 때문이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요즘 방송을 보면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어 관련 사고가 많이 난다"며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은 인기에 영합하지 말고 바른말 쓰기 운동, 선플 달기, 칭찬하기 등 언어폭력을 없애고 선진국이 되기 위한 사회적 자본을 쌓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혜민스님은 "나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의제를 사람들 사이에서 공론화할지 결정하는 언론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며 "언론이 국격을 해치는 폭로성 기사나 폭력 사건, 상대를 비난하는 정치성이 강한 이야기들에서 벗어나 균형감을 항시 유지하면서 지혜를 가져다 주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오피니언 리더 및 언론의 역할에 못지 않게 인터넷과 SNS를 주로 사용하는 개인 사용자들의 자정노력도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요즘 인터넷이 활발하고 SNS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저급한 표현들이 확산되는데 누가 나서서 이를 막기는 힘들다. 자신이 스스로 고쳐야 한다. 본인이 자각하고 자기정제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이후에 외부적인 요건으로 규제를 하는 방법이 있지만 타율 규제는 쉽지 않다"며 "지난 국회에도 관련된 법안이 있었으나 정치적인 해석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의 주장이 있어 법을 통과시키기 힘들었다. 스스로가 잘못된 것이 무언지를 깨닫고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 국격 향상, 사회지도층 역할이 중요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막말 파문 등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일부 정치인들이 득표를 위해 막말을 쏟아내거나 부추기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돼 왔다. 따라서 이제는 사회갈등 해소와 바람직한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해 오피니언 리더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특히 많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조직이나 지식인들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들이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만큼 우리사회 전체의 담론수준이나 토론문화를 높이는 활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정치권과 지식인들은 시민사회의 공적 이성이 더 높은 수준으로, 또 더 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 없이 팔로워들을 만족시키는 트윗만 날리거나 SNS 이용자들을 정치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 정치와 사회의 천박성은 더 높아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계 원로와 양식 있는 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이분들이 (국격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준엄하게 타이르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그 동안 막말이나 '무대뽀' 등 무조건 큰소리만 치면 된다는 미성숙한 문화가 지배해왔고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오피니언 리더들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진흙탕에 함께 빠지기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서 잘잘못을 가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막말을 앞세워 극단적인 정책을 펼치는 정치권의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이번 선거를 통해 볼 때 국민들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정책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어려운 문제라도 그 해결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협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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