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레몬' 같은 보험

미국인들은 품질이 신통치 못한 제품을 가리킬 때 ‘레몬(lemon)’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레몬은 먹음직스럽지만 실제로는 아주 신맛을 낸다. 그래서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실속은 형편없는 제품’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미국인들의 관점에서 중국산 제품은 전형적인 ‘레몬’이라고 할 수 있다. 납 성분이 검출된 장난감,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 치약 등에 이르기까지 안전성을 의심받는 사례가 폭주하는 상황이다. 이 정도면 ‘레몬’이 아니라 아예 ‘독극물’이라는 단어를 동원해야 할 판이다. 안정성을 의심받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리콜조치가 잇따르고 있지만 충분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산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글로벌 소싱이 일반화되면서 중국 제품에 가격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은 업체가 전세계적으로 부지기수다. 이러다 보니 나무젓가락 등 일부 제품은 중국산을 수입하지 않으면 아예 물건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프리랜서 기자 사라 본지오르니는 최근 자신의 저서 ‘중국 제품 없이 보낸 1년’을 통해 “중국 제품 없이 지내기란 난관의 연속”이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그녀는 중국산을 피하다 보니 둘째 아이에게 운동화 한켤레를 사주는 데 2주일이나 물건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장만한 이탈리아산 운동화는 값이 68달러로 중국산 제품(14달러)에 비해 거의 다섯 배나 비쌌다. 그녀는 “전자제품의 상당수가 중국산인 만큼 청소년 자녀를 둔 집에서는 중국산 제품을 안 쓰고는 못 배길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중국도 항변에 나서고 있다. 요지는 “중국은 세계의 공장인 만큼 외국 자본도 불량품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장샤오창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은 최근 다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포럼에서 “중국 수출품의 60%는 비(非)중국 기업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실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 문제는 ‘알뜰소비의 저주’라고도 할 수 있다. 경매에서 낙찰받기 위해 가장 높은 가격을 불렀다가 손해를 보게 되는 ‘승자의 저주’처럼 ‘보다 싼 것’만을 찾다가 불량품을 손에 쥐게 된 꼴이다. 지난 2005년 국내에서는 중국산 기생충 김치로 큰 소동을 벌였다. 당시 문제를 일으켰던 중국산 김치의 절반 이상은 국내 업체가 중국 현지에서 만든 것이었다. 우리와는 달리 제값을 쳐주고 엄격히 품질을 관리한 일본 김치업체들은 이런 소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알뜰소비의 저주’ 현상이 빚어지는 또 다른 분야는 보험이다. 보험은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미리 돈(보험료)을 모아 공동기금을 만든 후 이를 재원으로 사고를 당했을 때 경제적 피해를 보상(보험금)해주는 금융상품이다. 아무리 보험료가 저렴해도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짝퉁 보험’일 뿐이다. 상당수 보험 소비자들은 “보험사들이 보험상품 마케팅을 펼치면서 보험료가 싸다는 데 초점을 맞출 뿐 실제 보장은 미흡한 경우가 많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내년 4월로 예정된 4단계 방카슈랑스 연기 논란에 대해 일반인들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보험업계나 은행 관계자들이 격론을 펼치고 있지만 ‘누가 헤게모니를 쥐느냐’에만 관심을 쏟는다. 보험사들은 어떻게 하면 보험가입자 모집 과정의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을까를 놓고 골몰하는 반면 은행들은 이를 빼앗기 위해 안간힘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값이 싸면서도 사고를 당했을 때 경제적 피해를 제대로 보상해줄 수 있는 ‘진품 보험’이다. 방카슈랑스 연기 논란을 펼치기 앞서 ‘레몬 같은 보험’을 추방하는 노력을 전개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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