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추진 중인 신용불량자 채무재조정이 한결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무리한 빚 탕감에 따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대대적인 신용 회복 지원 계획을 잡았던 금융기관들이 원리금 감면 폭을 축소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26일 10개 금융기관이 공동 추심하기로 한 다중채무자 86만명을 대상으로 다음달부터 채무재조정을 실시하면서 원리금 감면 폭을 신용회복위원회 기준인 최고 33%보다 더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산은 관계자는 “일부 금융기관의 특수 채권 원리금 감면 계획이 와전되면서 다중채무 공동 추심 프로그램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빚 문제에 관한 모럴 해저드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부른다는 점에서 원리금 감면 폭을 신용회복위 수준보다도 오히려 더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이달 말 다중채무 자산을 기초로 1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한 뒤 다음달부터 자산관리회사(AMC)인 한국신용평가정보를 통해 채무재조정을 실시할 예정이다.
자체 신용불량자 25만명을 대상으로 최대 원리금 50%까지의 감면 계획을 내놓은 국민은행도 실제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원리금 감면 폭을 가능한 한 신용회복위의 기준에 맞출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또 일부 무수익여신(NPL) 채권의 경우 상환 비율에 따라 소폭의 원금 감면도 한때 검토했으나 모럴 해저드 우려가 나오면서 원금은 감면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3.4분기 기업설명회가 열린 지난 24일 “국민은행은 어떤 경우라도 원금을 탕감해 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미 상각 처리가 끝난 특수채권의 경우는 총 원리금의 40∼50%까지 감면되지만 이는 원금이 아닌 이자가 감면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실제 운용 과정에서는 30% 안팎에서 원리금 감면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며 50%까지 감면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은행은 이와 별도로 신용카드 부문의 소액 신용불량자 1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신용 회복 지원 프로그램에서도 원리금 감면 폭이 15∼20%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자체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원리금 감면 폭을 확대하지 않고 가급적 신용회복위원회 기준에 맞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원정기자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