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커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측 수석대표의 재협상 시사 발언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의회 관계자 등이 재협상 언급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협상 테이블에 직접 앉았던 인물들마저 재협상을 시사하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우리 당국자들은 “재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거나 “문구조정 등 기술적 협의는 하지만 타결 내용 이외의 새로운 내용은 논의할 수 없다”는 말로 재협상 불가 방침을 강력히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의 비준동의 없이는 협정이 발효될 수 없고, 협상 내용에 선언적인 규정만 명시해놓았거나 금융 단기 세이프가드 도입과 개성공단의 한국산 인정 문제처럼 추후 논의를 약속했던 부분도 없지 않아 무조건 협상 불가만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협상의 큰 틀을 허물어서는 곤란하지만 분야별로 미진했던 부분은 추가 협상의 형태로나마 별도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미 FTA는 양국 모두 국내외 정세의 압박으로 방어적 협정의 측면이 강하고, 특히 미국 측의 무역촉진권한(TPA) 시한에 쫓겨 개괄적 선언에 그친 분야가 없지 않다. 미 행정부가 의회를 핑계로 노동이나 환경 분야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도 노동권 강화 문제처럼 도리어 우리가 우위에 선 경우가 있는 만큼 사안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반면 아무리 FTA 체결 때 부속서를 추가한 전례가 있더라도 합의된 협상의 골격을 바꾸는 사태가 일어나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미국 자동차의 국내 시장 접근이 일정 비율을 넘어야 한다는 등 구속력 있는 새로운 합의는 한미 FTA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이고 국내 여론도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 FTA는 다자간 협상에 진척이 없자 새로운 경제적 활로를 찾으려는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해 이루어진 보기 드문 대타협의 산물이다. 이제 와서 국회의 비준동의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은 협상 내용의 변경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추가 협상이나 협정의 조문화 과정에서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