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1월 4일] 양치기 중앙은행

적지 않은 시간 한국은행을 출입하면서 기자는 중앙은행의 생명은 시장과의 신뢰와 소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앙은행이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불신의 골이 생기는 순간 ‘돈 맥(脈)’은 순식간에 막히고 이는 경제 전반을 악순환의 고리로 이끌고 간다. 시장과 중앙은행의 중간 통로인 언론과의 호흡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은의 정책 과정을 보노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양치기 중앙은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한미 간의 통화스와프 협정이 체결되기 전날인 지난달 29일. 기획재정부에서 ‘통화스와프 체결 임박’ 얘기가 흘러나왔다. 계약 당사자는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저녁 내내 사실관계 확인 취재가 한은에 집중됐다. 하지만 한은은 입을 맞춘 듯 한결같이 ‘결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심지어 “담당부서장도 모르고 총재도 모른다”며 “재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까지 반박했다. 일부 관계자는 “재정부 담당자와 통화해보니 그 쪽에서도 아니라고 하더라”는 ‘친절한’ 거짓말까지 보탰다. 그러나 불과 서너 시간 뒤 한은은 비보도를 전제로 협정이 체결됐다고 실토했다. 뿐만 아니다. 한은은 은행채 매입 건도 처음에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액션을 취할 만큼 상황이 급박하지 않다며 번번이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시장불안이 생각보다 심각해 은행채를 매입할 것”이라며 입장을 뒤집었다. 8월 말에는 ‘9월 위기설’과 관련해 ‘외국인 채권투자자금의 유출 가능성 분석’이라는 긴급자료를 내놓고 9월 만기 도래한 외국인 채권의 대부분이 재투자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결국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갔다. 거짓전망을 한 셈이다. 물론 한은의 입장도 이해한다. 통화스와프라는 중차대한 건은 파트너를 고려해야 하고 주요정책은 상황에 따라 입장이 바뀔 수 있다. 그렇다고 언론에 태연하게 거짓말로 대응하는 것은 분명 문제 있는 태도다. ‘노코멘트’와 ‘노’는 천지차이다. 한은이 정책집행기관으로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점점 등한시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뒷북 대응’이라고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한은이 시장과의 소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마저 잃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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