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외국계 은행이 떠나는 이유

소매금융시장 성숙기 접어들고 저(低)신용 차입자 대출 확대 등 일관성 없는 정책에 수익 저조

외국 자본 유치 하려면 규제 신중히 할 필요 있어

이재웅 성균관대 명예교수


최근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계은행 지점은 없는 반면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계은행들은 상당수가 몸집을 줄이고 있다. 외국계은행들은 한국이 가장 장사하기 어려운 시장 중의 하나라고 보는 것 같다. 시티뱅크·스탠다드차터드 같은 글로벌 은행들조차 국내의 소매금융 부문에서 고전하는데다 그동안 경기침체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및 규제개입 등으로 은행 수익성은 저조하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나 HSBC가 한국을 떠나는 것은 외국금융기관들이 한국시장에 발붙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근래에 한국의 저축률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우리는 더 이상 1980년대·1990년대의 높은 저축률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국내 저축률이 줄어든 것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외국자금을 유치해야 하며 국내 금융시장도 경쟁력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은 제조업 부문에는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이 있다. 그러나 금융산업에는 경쟁력이 있는 글로벌 은행이 없다. 이제 한국도 선진국 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을 가져야 한다. 2000년대 초부터 정부는 한국 금융시장을 보다 글로벌화하고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주요 금융허브로 만든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기 위해 폭넓은 금융개혁·규제완화 등을 추진하고 글로벌 은행들을 국내로 유치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지지부진했고 한국은 국제금융허브인 홍콩·싱가포르 등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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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은행들은 왜 한국을 떠나는가.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외국계은행이 떠나는 것은 한국의 금융환경 악화로 은행 수익성이 떨어지는 데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높은 가계부채, 인구의 급격한 노화현상, 성숙한 소매금융시장의 치열한 경쟁 및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강화 등은 국내 금융환경을 크게 바꾸면서 은행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문제는 정부의 다양한 구제조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상당 기간 소비 수요를 짓누를 것으로 전망된다. 출산율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인구구성상 양질의 소비자 대출 기회가 가까운 장래에 회복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에서 은행은 국내은행이건 외국은행이건 이러한 환경변화의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

외국계은행은 그밖에도 다른 두 가지 이유로 인해서 수익성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첫째는 소매금융시장은 이미 성숙단계에 접어들어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데 외국계은행은 지난 10년동안 고성장기에 소극적인 확장전략을 추구한 결과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둘째는 규제조치가 저(低)신용 차입자 대출을 확대해 은행의 수익률을 떨어트린다. 특히 이들의 신용관리 비용은 늘어나는데 순이자 마진이나 수수료는 정책당국의 규제개입으로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금융산업이 준(準)공공 부문 같이 인식돼 제조업 부문의 성장을 지원할 뿐 그 자체가 이익을 내고 성장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은행들이 모기업의 국제도매금융보다 수익성 있는 투자은행에 활용하기 위해 자본을 재배치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한국 금융시장이 당면한 구조적 문제와 장기적 인구 문제를 고려하면 투자자본에 대한 적정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외국계은행이 한국시장에 다시 돌아와 영업활동을 확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을 떠나는 외국계은행들은 한결같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본국 차원의 구조조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외국자본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에 대한 보다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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