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비정상화의 정상화' 성과내려면

임석훈 정보산업부장 shim@sed.co.kr


유도를 처음 배울 때 먼저 낙법(落法)을 배운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 중 넘어졌을 때 다치지 않는 방법을 습득하면서 기본을 익혀간다. 바둑에서도 정석(定石)을 배우고 지우라는 말이 있다. 기본을 충분히 익히고 익혔으면 잘 운용하라는 것이다. 현악기를 다루는 전문가는 항상 줄의 느슨함을 점검하고 전장에 나가는 군사들은 언제나 총·칼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모두 기본의 중요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많은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새해 화두로 기본을 거론한다. 요지는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변화의 시기에 적기 대응하는 자동차업체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며 "생산·판매 전 부문이 기본으로 돌아가 기초역량을 탄탄하게 다져라"라고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도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했다. 스스로의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규모와 힘을 함께 길러나가야 한다"며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세계 굴지의 금융기업들이 공감하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힘든 때일수록 기초를 잘 다지자는 호소로 읽힌다. 백 투 더 베이직은 초심(初心)을 잊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성찰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들어 '비정상의 정상화'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잘못된 관행 바꿔 기본으로 돌아가야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물론이고 각종 단체의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서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를 비롯해 국무회의와 비서관 회의 등을 통해 이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비정상적 관행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정상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란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가보면 비정상의 정상화는 '과거로부터 지속되어 온 잘못된 관행과 비리, 부정부패를 바로잡기 위해 추진하는 정부의 개혁 작업'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 실현을 위해 10대 분야 핵심 과제, 32개 단기 과제를 발굴했다.

관련기사



과제들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돼온 공공부문의 난맥상 등 고질적·구조적인 문제가 총망라돼 있다. 이런 숙제들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수년, 수십년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그냥 넘어가면서 누적돼온 악습들이다. 감사원 등이 수시로 내놓은 정부 및 공공기관 감사 결과에 나오는 단골메뉴다. 매번 고쳐야 한다는 지적을 받지만 그때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행태가 되풀이되고 또 비슷한 감사 결과가 발표된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격이다. 이런 비정상은 대부분 기본에 충실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정부도 '말로만 개혁'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상화의 의미를 물건이나 상황을 원래 있던 대로 되돌려놓는다로 생각하면 정부가 역설하는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본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낙하산 인사, 규제 만능주의 등으로 비정상을 악화시킨 정부의 잘못이 작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의 비정상을 말하기 전에 기업이나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규제 등이 없는지부터 살펴보는 게 먼저다.

대못 규제 등 정부부터 정상화 필요

비정상의 정상화는 잘못된 관행의 뿌리를 뽑고 그 자리에 새로운 관행을 심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정부의 잘못된 관행, 비정상은 어떤 분야의 그것보다 미치는 폐해가 크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계획'을 밝히면서 자신이 직접 규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모든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규제 혁파가 정부 정책목표의 윗자리를 차지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규제 숫자만 줄이는 겉치레에 머물러서는 소용없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기업과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성과를 거두려면 정부 스스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최우선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