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는 세계 경제가 테러라는 돌발 악재에 맞닥뜨리며 다중(多重)의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이라크전 종결 이후 세계 경제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장밋빛 전망이 지속돼왔다. 그러나 최근 원자재값 고공행진, 고용없는 성장, 중국의 세계 경제 견인력 약화, 증시 거품론 등으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이 와중에 테러 공포라는 지정학적 요인까지 가세돼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테러의 경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은 물론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보태고 있다.
◇커지는 테러 위협에 휘청이는 금융 및 상품시장=지난 11일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사건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이슬람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미 본토는 물론 동맹국까지 테러를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 실제로 그리스와 파키스탄에서 테러용으로 추정되는 폭탄이 발견되고 호주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테러 가능성을 공식 언급하면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15일 미국에서는 주요 경기지표인 2월 산업생산지수가 기대치보다 높게 나왔지만 테러로 얼어붙은 시장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날 뉴욕증시의 나스닥과 다우지수가 각각 2.29%, 1.34% 떨어져 연중 최저치로 추락한 것을 비롯 전세계 증시는 테러 여파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와 관련 MSNBC는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을 인용, 최근 조정 양상의 미 증시가 테러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까지 맞물려 5~10% 가량 추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도 15일 “테러 위협으로 투자자들의 안전 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세계 증시가 타격을 입게 됐다”고 전했다.
◇세계 경제 불안감 당분간 지속 가능성=테러 공포가 확산되면서 유럽연합(EU)이 고위급 회의를 열어 대(對)테러 대책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테러 방지책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 세계 금융시장 및 상품시장의 요동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조정 양상의 세계 경제에 테러 위협까지 가세한 지금의 상황에서 불안감 해소가 쉽지 않기 때문.
세계 경제의 3대 성장 엔진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은 최근 경제 회복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분석이 제기돼왔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전망치를 뛰어넘는 경제지표가 랠리를 이뤘지만 올들어 2월 이후에는 그 같은 상황이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률이 연율 기준 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던 일본도 최근 경제성장률을 6.4%로 하향 조정했으며, 물가동향을 나타내는 GDP 디플레이터 역시 2.7% 하락, 여전히 디플레 수렁에서 헤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유럽 역시 독일, 프랑스 등의 소비 심리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속에 테러 공포가 확대될 경우 무엇보다도 투자 심리가 위축돼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보유 주식을 내다 팔거나 관망하는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달러 약세와 수급불안으로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상품가격이 재차 뛰면서 소비심리를 더욱 냉각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경우 세계 경제는 다시 불황으로 U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테러로 시장이 충격을 받더라도 이미 저금리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이 더 이상 금리인하를 통해 경제회복을 꾀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테러 위협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그동안의 협조체제를 느슨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도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 경제에는 악재다. SW바치의 피터 카르딜로 수석 마켓 애널리스트는 “이번 테러는 예전에 발생했던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더욱 우려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의 강한 동맹들이 이번에는 테러 위협 때문에 미국과의 공조에 비협조적으로 변할 경우 그 악영향은 결국 경제로 직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원정기자 ab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