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은 `춘향전` `흥부전`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다. `춘향전`과 `흥부전`은 그 모델이 된 실존인물과 더불어 지역적 배경이 전북 남원으로 밝혀져 이를 관광자원화한 지 이미 오래됐지만, `심청전`만큼은 그 모델이 실존인물이었는지, 또 그 지역적 배경이 어딘지 알려지지 않은 채 그동안 이설만 분분했었다.
그런데 근래 전남 곡성군이 심청의 고향이라고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서 해마다 섬진강변에서 심청축제를 펼치고, 심청마을 조성에도 나서고 있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곡성이 심청의 고향이라고 내세우는 근거는 이렇다.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기슭에는 백제 때 창건된 고찰 관음사가 있는데, 이 절에서 전해내려온 `관음사사적기`에 실려 있는 원홍장의 설화가 바로 심청전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전인 백제 고이왕 때 오늘의 곡성군 오곡면 송정리 도화촌에 원량이란 가난한 장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 눈이 멀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생계를 꾸려오던 아내가 산고끝에 죽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홀아비가 되고말았다. 그런 까닭에 원량은 갓태어난 딸 홍장을 동냥젖을 얻어먹이며 키울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홍장은 어느덧 꽃다운 열여섯살 처녀로 자라났다.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어느날 두 부녀는 홍법사의 성공대사를 만났는데, 대사는 간밤 꿈에 부처님께 계시했다면서 홍장을 시주로 바치라고 했다. 자신의 희생으로 눈먼 홀아비가 앞을 볼 수 있다는 바람에 만고효녀 홍장은 아버지를 작별하고 성공대사를 따라 길을 떠났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운명이 또 바뀌어 소랑포란 갯가에서 중국 사신 일행을 만났는데, 그들은 원홍장을 보자 자신들이 찾아온 황후감이 틀림없다면서 많은 금은보화를 폐백으로 내놓고 원홍장을 모셔갔다. 중국으로 건너가 고귀한 신분의 황후가 된 홍장이지만 하루도 조국 백제와 눈먼 홀아비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금동관음보살상을 조성하여 이를 돌배에 실어 보냈다.
그때 옥과현에는 성덕이란 불심깊은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바닷가에 나갔다가 이 돌배와 금동불상을 발견했다. 성덕처녀가 이 관음상을 모신 곳이 오늘의 곡성군 성덕산이었다. 성덕산 관음사의 관세음보살은 매우 영험하다고 소문나 숱한 백제사람이 찾아와 기도를 드렸고, 홍장의 아버지 원량의 눈도 뜨게 해주었다. 이러한 연기설화가 전해내려오다가 언젠가부터 구전소설의 형태로 변해 마침내 `심청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황원갑(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