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현오석 KDI 원장

"경기 하방위험 커져 균형재정 조기달성 재검토 필요"


4분기 지표 예상 밑돌면 적극적 재정정책 펴야
내년 경제 최대 위험요인은 세계경기 둔화·가계부채
대선·총선 앞둔 정치권 대증요법 남발 우려도
정부, 계기비행 대신 시계비행… 정책대응 탄력성 높여야
"최근 대외여건의 악화로 우리 경제의 하방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균형재정 달성 시점을 오는 2013년으로 앞당겼는데 이 시점이 적절한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동대문구 KDI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 강화라는 정부의 정책기조는 바람직하지만 위기 시에 대비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직 경기침체가 가시화된 게 아니기 때문에 즉각 재정을 확대할 필요는 없지만 올 4ㆍ4분기 경제지표가 예상을 크게 밑돈다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 여지가 있다는 게 현 원장의 설명이다. 또 그는 내년도 경제운용의 가장 큰 우려요인으로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악재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대선 등 정치 일정이나 남북관계에서 예기치 못한 급변사태가 터지는 경우를 꼽았다. 특히 대선ㆍ총선을 앞두고 복지 분야는 물론 사회간접자본(SOC)ㆍ중소기업 예산을 늘리는 등 대증요법이 남발될 수 있다는 게 걱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그는 "정부 당국자들이 사전에 정해진 계기비행보다는 조종사의 상황판단에 의존하는 시계비행을 통해 정책대응의 탄력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급변에 대비해 금융 부문 외에 재정정책을 포함한 경제운용 전반을 포괄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원장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글로벌 재정위기의 원인과 전망, 복지 논쟁, 가계부채 등 현안에서부터 선진국의 기부문화와 청년실업 문제까지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올해 성장률 4% 안팎 될 듯 KDI는 국내 연구기관 중 경제예측의 정확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가 대표적인 사례다. KDI가 성장률 전망치를 민간 연구소보다 다소 높은 5.8%로 제시하자 외부에서는'국책연구기관 아니랄까 봐 정부 눈치를 본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실제 성장률은 6.2%로 KDI의 예상에 근접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KDI는 지난해 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정부(5%)나 한국은행(4.5%)보다 낮은 4.2%로 제시했고 이 숫자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4% 안팎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KDI의 예측력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현 원장은 올해 성장 전망에 대해 "11월에 공식 수정치를 발표할 계획"이라며 "글로벌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하방위험이 커지고 있어 4.2%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4% 달성 여부는 다음달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결과에 좌우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G20이 재정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시그널(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우리 수출도 악영향을 받으면서 4% 유지도 힘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재정위기 오래간다 현 원장은 글로벌 재정위기 해결 방안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쉽지 않아 상당 기간 대외여건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그리스 재정 문제에 대해 '채무 유예 내지 탕감' 즉 '질서정연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최선의 해결책이지만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리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세계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내년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는 대외적으로 세계경제 둔화 가능성을,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를 꼽았다. 하지만 현 원장은 자신을 '조심스런 낙관론자(Cautious Optimist)'라고 평가한 뒤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글로벌 재정위기라는 충격이 갑자기 들이닥쳤지만 내년에는 위기상황이 지속될 뿐 예상치 못한 충격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그는 "올해 경제가 당초 전망치를 밑돌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내년에는 기저효과도 일부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수출 증가세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최근 다소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소비나 투자는 대체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3,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자본유출입 규제, 단기외채 감소 등 외환건전성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개선됐다는 점도 낙관론의 근거로 들었다. 다만 그는 최근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경기안정화를 위한 조치들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가불안이나 가계부채 등을 고려할 때 확장적인 통화ㆍ금리정책을 펴기는 어렵고 재정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정책을 펴되 가장 필요한 분야에서 재정지출을 집중하는 전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 원장은 "국제통화기금(IMF)도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국가에 대해서는 탄력적인 재정운용을 권고하고 있다"며 "경기급랭에 대비해 재정지출을 늘리되 중장기적으로는 경직적인 복지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재정을 건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화ㆍ금리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가계부채와 전셋값 상승의 기저에 저금리가 있는 만큼 금리 정상화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지금은 물가에 여전히 중점을 두되 경기둔화에 대비해 정책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며 다소 아쉬움을 내비쳤다. 현 원장은 "KDI는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향후 경기급랭에 대비해서도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시장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한은이 미리 금리를 좀더 적극적으로 올렸더라면 통화정책의 운용 여지가 커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복지보다 성장잠재력 확충 시급 현 원장은 내년도 우리 경제의 어젠다에 대해서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정부가 올해 상생발전을 통해 공정사회의 기반을 마련한 만큼 내년에는 기술발전과 인력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원장은 "우리 경제는 현재 중진국 함정에 빠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지금까지는 선진국을 모방하는 후발 추격 전략으로 발전해왔지만 앞으로는 창조적인 작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확충 요구가 거세다'는 질문에는 "반값 대학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보다는 빈곤이 집중된 분야, 특히 노인 빈곤과 근로연령층의 빈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 원장은 "복지 문제는 정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기부문화가 활성화된 선진국을 예로 들었다. 고율의 세율로 고소득층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기보다는 세율을 낮추면서도 기부문화를 활성화해 민간주도의 복지 확충을 유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의 원인인 '잡(Job) 미스매칭'의 해결책으로 이른바 '스펙' 위주의 채용보다는 '잡 익스피어런스', 즉 경력 중심의 채용문화 확대를 제시했다. 그는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에서 1~2년을 허송세월한다"며 "기업의 채용문화가 경력 중심으로 바뀌면 중소기업 구직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젊은이들이 대기업이나 공기업으로 이동하면서 인력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싱크탱크로 가자"… 불혹맞은 KDI에 새바람
■玄원장, 위상강화위해 동분서주
영문보고서 게재등 해외홍보 강화… 연구주제도 장기비전 제시에 초점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들은 현오석 원장 취임 이후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현 원장의 호출을 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 심지어 한밤중에 원장의 전화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설립 40주년인 올해는 현 원장의 호출이 더 잦아졌다는 게 연구원과 직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현 원장은 불혹을 맞은 KDI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궁극적인목표는 글로벌 연구기관으로서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가 발표한 '글로벌 싱크탱크 순위' 조사에서 6,480곳 가운데 75위에 오르는 등 이미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과소평가돼 있다는 게 KDI의 판단이다. 국책연구기관이라는 특성상 국문 보고서가 대부분이어서 외국에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게 KDI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이 때문에 현 원장은 국문 보고서를 영문으로 바꿔 게재하도록 하는 등 해외홍보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해외홍보를 담당하는 대외협력실의 기능을 대거 확충하기도 했다. 연구주제도 우리 경제의 장기비전 제시에 초점을 맞췄다. 10~20년 후를 내다보는 정책과제를 정부에 선제적으로 제시해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위상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그가 제시한 주요 연구 분야는 네 가지. ▦시장경제 선진화와 성장잠재력 확충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변화된 환경과 정책 방향 ▦사회통합 제고를 위한 복지지출 효율화 ▦개발도상국 개발 지원 등 국제경제 협력 강화 등이다 하지만 KDI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오는 2013년 세종시 이전이 결정되면서 박사급 인재 확보가 어려워지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지금도 박사급 인력이 60명도 채 안 돼 심각한 업무부담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예산부족도 유능한 연구인력 확보에 걸림돌이다. 현 원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년 연장과 연금제도 도입 등 처우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편 KDI는 오는 24~25일 '민주화와 세계화 시대의 한국경제의 성과와 과제'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번 세미나에는 ▦한국경제의 성장패턴과 구조변화 ▦1987년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 ▦정부ㆍ기업 간 관계와 기업지배구조 ▦금융 시스템과 규제 패러다임 변화 ▦사회복지제도의 발전 노동·교육 및 인적자본의 변화 등을 주제로 6편의 발표가 진행된다. 개원 40주년 기념 세미나에는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 랜덜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 등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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