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金埈秀 정경부 차장경제부처 관료들의 근래 행태를 보면서 강경식 전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에 대한 사법처리를 중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고개를 든다. 「환란의 주범」에 대한 국민정서나 현실적인 면을 고려할 때 엉뚱한 발상이라고 할지는 모르나 관료사회를 깊이 들여다 보면 과연 정책판단에 대해 사법적 심판을 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관료사회, 특히 경제부처에는 姜 전부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복지부동하는 모습이 도처에 만연해 있다. 최근 삼성자동차의 처리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관계부처장관들이 발을 빼고 있는 모습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97년 7월 강경식 당시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기아사태를 맞아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외환위기에 몰려 경제가 풍전등화인 상태에서도 시장경제만 외쳤던 姜전부총리는 막상 기아사태가 터지자 정치논리에 휘말려 시장경제를 외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입었다. 당면 현안인 삼성자동차 처리문제도 기아차의 경우와 같이 경제논리에 의하지 않고 정치적·지역적·집단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8일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부처장관들이 청와대에 모여 교통정리를 했다. 삼성이 무한책임을 져야 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삼성과 채권단이 협의해 결정토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날 회의가 전한 메시지는 시장경제의 허울아래 삼성과 채권단에 해결을 미루고 정부는 책임라인에서 빠진다는 데 있다. 정부는 이어 12일 청와대·여당 및 부산시 관계자들과 함께 부산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삼성차를 시장경제 원리대로 처리한다면서 부산출신 청와대 정무수석이 간담회를 주도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경제관료들은 권한과 책임을 포기하고 정치논리를 스스로 수용했다. 이제 지역문제는 절대로 경제논리로는 풀 수 없게 됐다. 그린벨트 해제, 위천공단 문제, 새만금 사업 등 굵직굵직한 지역경제 현안들이 이제 공식적으로 정치현안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선거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제현안이 곧 정치현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책당국자 스스로 경제현안을 정치현안으로 미룬다면 그 해답은 자명하다. 우리가 삼성차에서 제2의 기아사태를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철저한 시장경제론자인 姜전부총리는 막상 중요한 순간에 시장경제를 외면해 실패한 관료가 됐다. 반면 과거 관치경제시절 유능한 정책입안자로 이름을 드날렸던 康장관 등은 시장경제를 과잉으로 실천하고 있다. 현 경제팀이 시장경제의 베일 뒤에만 있지말고 관료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앞장서서 정치·지역논리를 방어한다면 논점이 보다 뚜렷해지고 답도 빨리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용보다는 모양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姜전부총리처럼 자칫 덤터기를 쓰면 큰 일 난다는 생각 때문일까. 정책판단에 대한 사법적 처리가 유능한 경제관료에게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케 한다. /J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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