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면피공화국] 개혁명분 몰아치기식 단죄 역효과

걸핏하면 문책에 "소나기 피하자" 소신 실종현 정부 들어 기용됐던 어느 경제부처 장관은 6개월 이상 되는 장관재임기간 동안 결제를 했던 사안이 5건도 채 안 되었다. 또 최근 한 시중은행장은 "대출을 하지 않으려면 보따리를 사라"고 일선지점장에게 일갈했다. 한 전문경영인은 투자효과가 자신의 임기가 지난 뒤인 3~4년 뒤에 나타난다는 실무자의 말에 투자계획을 보류시켰다. 정부의 중요한 정책결정과 금융회사의 일선창구, 기업의 의사결정 등 중요한 경제현장에 '면피주의'가 만연돼 있다. 과거 팽창주의식 의사결정이 거품경제를 낳았고, 이로 인해 외한위기를 초래했다면 이제는 면피ㆍ보신주의로 인해 중요한 의사결정이 뒤로 미뤄지면서 경제의 볼륨이 줄어드는 '주름살경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매급 문책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면피주의 불렀다 정부의 '전횡'과 경영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청문회 및 민ㆍ형사상 문책이 구조조정과 경영투명성 등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않고 몰아치기식으로 '단죄'를 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지고 있다. 걸핏하면 청문회에 불려나가고 정책적 판단이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소신 있는 정책을 펼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대마불사'가 만연하던 시절 대기업에 대출해준 책임으로 직장을 잃은 데 그치지 않고 퇴직금의 수십배에 이르는 손해배상소송까지 당하는 옛 동료들을 보고 누가 감히 대기업 대출을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이와 함께 축소지향적 구조조정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면피주의를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4년 동안의 구조조정은 조직감축ㆍ인원축소 등 지나친 하드웨어 개혁으로 치달았다. 정작 중요한 소프트웨어 개혁은 등한시 하고 조직축소에만 골몰하다 보니 '튀는 행동'을 할 수가 없는 풍토가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기업ㆍ금융회사ㆍ가계ㆍ정부 등 각 경제주체들에 있어 책임을 떠안기보다는 순간을 모면하려는 면피주의적 행태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여기다 의사결정의 민주성 등을 중시하는 방어적 시스템의 여파로 각 분야의 리더십이 부재한 것 또한 문제다.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은 각 분야에서 추진세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나 금융기관, 기업 어디 할 것 없이 '위원회 천국'이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면피주의 만연은 당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성장 잠재력 훼손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금융회사들은 규정에 얽매인 여신관행을 유지하고, 기업들은 수동적 교과서식 경영을 하며, 정부는 조정능력을 상실한 채 흘러가다 보면 경제전체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특히 각 분야에 나타난 면피주의는 당장에 큰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작용이 표피적으로 나타날 경우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했을 경우라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의식변화와 성과ㆍ보수 시스템 정착해야 면피주의는 결국 경제주체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사회적 의식변화도 함께 필요하다. 무엇보다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을 방어적이 아닌 공격적인 형태로 펼칠 필요가 있다. '위험회피'가 아닌 '위험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과나 보수시스템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과거와 다른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려면 이에 걸맞는 보수체계도 따라가야 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환위기가 정부 민간 등 각 분야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무모한 정책결졍, 의사결정이 불러온 것들을 명심해 책임은 강화하되 이에 합당한 권한과 또한 보수체계도 따라야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면피주의를 없앨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금융ㆍ기업ㆍ공공ㆍ노동 등 구조조정 일정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최대한 높여주어야 한다. 온종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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