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과 지난해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에서 기자의 통역을 맡은 이는 공교롭게도 둘 다 건축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식사자리에서 아들을 건축가로 키우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자 둘의 반응이 똑같았다. "다른 직업을 놔두고 왜 하필 건축가냐"며 극구 만류했다. 자신들이 비록 건축을 전공하지만 건축가가 일은 고되고 일한 만큼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건축사 자격증을 따서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국내 건축설계업계가 처한 현실을 보면 두 유학생이 느끼는 불안이 이해된다. 지난해 국내 건축설계업계 10위권의 무영건축과 공간건축이 잇따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인력 감축과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건축설계업계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다양하다.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일감 부족, 낮은 설계 단가, 외국 건축가 선호 현상, 과당 경쟁 등등. 무엇보다 부가가치, 취업 유발 효과가 높은 건축설계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흡했던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지난달 '건축서비스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2억3,000만원 이상의 공공부문 건축설계는 의무적으로 공모방식을 통해 설계자를 선정하도록 하고 건축가들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실비정액가산방식 등 설계 용역비 체계를 새로 마련하기로 했다. 앞서 서울시도 지난해 턴키 발주 금지, 공공건축 발주제 개선, 공공건축가 제도 도입 등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이제는 건축설계업계가 응답할 차례다. 발주처가 만족할 만큼의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자문하고 고강도 혁신과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또 글로벌 건축 시장에 진출해 경쟁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만큼 업체 간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국내 건설사들이 외국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것을 탓하기 전에 우리 건축가들이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건축 대중화와 스타 건축가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