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덤핑금리에 시장 춤춘다] 오락가락 정책에 금융사 수익 또 비상… 이자생활 은퇴자 곤혹

대출금리 파격인하에 예적금 금리 연쇄 하락

금리 결정권 사실상 정부가… 자율경영도 한계

금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여파로 시중 여수신 금리가 수직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의 한 지점에서 고객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새 경제팀 등장으로 금리인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심지어 인하 관측마저 나오면서 금융사와 고객의 혼란이 더 커지는 느낌입니다. 특히 금융사들은 안 그래도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금리를 많이 내렸는데 시장 금리가 추가로 인하되면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부동산 시장을 띄워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인데 현재 주택 시장의 구조를 보면 정책 효과도 의문이구요. "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경제 사령탑으로 입성하자마자 시장에서 금리에 대해 비둘기적 시각(인하 또는 저금리 장기화)이 나오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은 속내를 내비쳤다. 가뜩이나 정부 규제로 시장 금리 왜곡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판에 금리인하를 겨냥한 전방위 압박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담겼다.


올 들어 금융회사의 금리전략은 갈지자를 그려왔다. 상반기만 해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여수신 정책의 큰 그림도 여기에 맞춰져왔다. 하반기 공격적인 여신 운용을 펴기 위해 장기 수신 상품의 금리인상이 단행됐고 은행들은 정부 규제에 맞춰 3% 초반까지 낮아진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운용 정책 기조가 경기 부양으로 초점이 옮겨가면서 이런 선제적 움직임은 금융사에 독이 될 판이다. 무엇보다 금리 덤핑이 은행의 여수신 수급 균형을 무너뜨리고 은행 수익성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리를 내려도 자산가격만 올렸다 떨어질 가능성이 커 은행으로서는 악재가 될 것"이라며 "특히 베이비부머 등 은퇴자 입장에서만 예금금리 하락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들쑥날쑥 정책에 금융사들은 춤을 추고 있고 고객들의 불신만 커지고 있는 셈이다.

◇갈지자 정책에 시장 왜곡 심화…춤추는 금융사=지난 3월 동부저축은행은 15개월 만기 금리 2.9%, 18개월 만기 금리가 3.0%인 예금상품을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금융계에서는 장기 수신 상품의 금리가 높아져 저금리 아래에서 금리가 거의 같거나 단기 상품이 오히려 높았던 금리의 비정상화가 되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4개월도 안 돼 이런 진단은 무색해질 지경이다. 정부가 다시 금리인하를 밀어붙일 태세를 보이면서부터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대출금리도 제대로 받기 힘든 상황에서 미리부터 고금리로 예금을 받아준 셈이 됐다. 규제와 오락가락하는 정책 방향에 따른 부작용은 대출 사이드에서 더 심각하다.


은행들은 가계 대출 금리를 지나치게 내린 탓에 수신금리도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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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올해 말까지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20%까지 맞추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상당수 은행이 기준에 5%포인트 내외 못 미치면서 5년 고정금리 혼합형 대출금리는 농협은행 3.25%, 기업은행 3.29%, 외환은행 3.25% 까지 내려왔다. 일부 은행은 고정금리 대출 금리가 변동금리 상품보다 더 싸 금리 리스크에 취약해지고 있다. 대출금리의 파격적 인하는 예적금 금리의 연쇄 하락으로 이어져 고객 불만도 적지 않다.

저금리 기조에 정부 규제가 부작용을 키우는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릴 경우 은행 경영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가령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금리가 내릴 경우 가뜩이나 낮아진 고정금리 대출을 더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가격 결정을 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몰리고 있다.

이는 결국 예대마진 축소, 은행 수익성 악화, 추가 수신 금리 인하라는 악순환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금리를 더 내리면 중소기업 대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지만 중기 대출은 금리가 아니라 신용도와 부도 가능성에 의존한다"며 "금리인하에 따른 유동자금의 타깃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세월호 여파가 크지만 기본적으로 수출 경기가 괜찮고 경제의 성장 모멘텀도 크게 훼손되지 않아 금리에 손을 댈 상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수익성 악화에 가격 결정권마저 상실=정부가 서로 다른 정책으로 금융사를 옭아매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금리하락으로 실적은 나빠질 판이지만 이를 극복할 수단인 금리 등 가격 결정권을 정부가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다.

역마진 우려에 시달리고 있는 보험사는 금리인하가 단행될 경우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사들은 이달 저축성보험의 공시이율을 3% 후반대까지 낮추고 보장성보험의 판매에 주력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금리 리스크를 낮추려면 장기채권을 많이 매입하고 금리 연동형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두 방안에서 보험사의 활로 모색은 더 이상 힘들다. 결국 금리가 낮아지면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정부의 가격 규제로 여의치 않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박사는 "장기적으로 금리인하 기조가 맞지만 단기적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고객 편익을 높인다면서 금리를 낮추도록 하면서 재무 건전성에 무리를 줄 수 있는 가격 통제는 이율배반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시장금리가 워낙 내려가 있어 기준금리가 인하돼도 금리 인하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금리결정권을 사실상 정부가 쥐고 있어 자율적 경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자산가 타격, 위험 자산으로 자금 이동 커질 듯=대출금리 인하가 수신금리 하락을 부르면서 은퇴자, 자산가 계층 등의 불이익이 예상된다. 은행 입장에서 줄어드는 대출 이자 수익을 저축 고객이 메워주는 셈이다. 은행들이 최근 중위험·중수익 상품 출시에 혈안이 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은행들은 예금에 인덱스펀드를 붙이는 수준에서 더 나가 셰일가스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해외에서 발행된 후순위채를 국내에 들여와 환헤지를 한 후 판매하는 상품도 출시했다. 금융공학, 펀드 지향적 상품이 은행 내에서 세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은퇴시장의 경우 연금을 기본으로 깔고 나머지 자금을 갖고 수익률을 높이는 경쟁으로 갈 것"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보수적인 은행들도 상품 구색을 더 넓혀 자금을 붙들어두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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