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사람이라면 어렸을 적 ‘슬링키(slinky)’라는 스프링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양 손에 들고 이리저리 옮기기도 했지만 누가 뭐래도 슬링키의 백미는 역시 계단놀이다. 계단 위에 슬링키를 올려놓은 후 스프링 윗부분을 아래로 살짝 밀어뜨리면 촬~ 촬~ 소리를 내며 한 계단씩 내려가는데,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단 끝까지 보냈을 때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에 우쭐하기도 한다. 바로 이 슬링키 계단놀이를 중력이 거의 없는 달에서 한다면 어떨까. 계단을 제대로 내려올 수 있을까. 슬링키를 발명한 리처드 제임스의 아들이자 자칭 슬링키 초고수라는 톰 제임스는 이 질문에 회의적 입장을 표명했다. 지구 대비 38%의 중력이 있는 화성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17% 정도에 불과한 달에서는 운이 좋아야 한 계단 정도 떨어진 뒤 멈추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항공연구소의 천체물리학자 마크 쿠치너 박사는 평범한 플라스틱 슬링키로도 달에서 충분히 계단놀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스프링과 마찬가지로 슬링키에도 잠재 에너지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일단 계단 아래로 떨어뜨려만 주면 중력과 관성의 힘에 의해 맨 아래 계단까지 내려온다는 것의 그의 설명. 단지 달에서 계단놀이를 할 경우 중력의 크기에 비례해 슬링키의 하강 속도는 지구의 40%정도일 것이며, 계단과 계단 사이의 높이 차이도 최소 17.5cm 이상 돼야 동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에서는 2.5cm의 높이 차이만 있으면 가능하다.) 특히 달의 대기권 높이는 기껏해야 지면으로부터 2.5cm(달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대기권은 없는 상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슬링키 특유의 소리를 들을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것이 좋다. 톰 제임스의 생각처럼 달보다는 화성에서 좀 더 손쉽게 슬링키를 즐길 수 있다. 상대적으로 중력이 강해 계단 간의 차이가 7.5cm만 되도 계단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쿠치너 박사는 화성에서는 스틸 재질의 슬링키가 아닌 플라스틱 슬링키의 사용을 권고한다. 철보다는 플라스틱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힘이 적게 들고, 금속이 잘 산화되는 화성의 여건상 철은 한 달도 못돼 녹 덩어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