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14일] 타이타닉

1912년 4월14일 밤11시40분 북대서양. 시속 22노트의 전속력으로 달리던 타이타닉호 앞에 큰 빙산이 나타났다. 조타륜을 황급히 돌린 끝에 충돌은 겨우 피했지만 선체 옆구리 80여m가 찢겨나갔다. 들이치는 바닷물에 16개의 격벽도 소용없었다. 사고 2시간40분 만에 침몰.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불침선(不沈船)’이란 각광 속에 영국에서 출발, 미국으로 가는 처녀항해에서 침몰한 타이타닉의 최후다. 4만6,328톤짜리 호화여객선은 1,513명의 목숨도 함께 안고 갔다. 구조된 사람은 695명. 1등실과 2등실 승객이 대부분이었다. 1등실 운임은 3,100달러, 3등실은 38달러. 부상당한 엄마의 치맛자락에서 손을 떼지 않았던 세살배기 여자아이를 제외한 1ㆍ2등실의 어린이 승객들은 전원 구조됐지만 3등실에 탔던 어린이들의 절반은 바다에 잠겼다. 비극을 망각시키는 시간 속에서 타이타닉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뀌고 있다. 1997년 개봉된 영화 ‘타이타닉’의 흥행수입만 19억달러. 역대 1위다. 바다 속 타이타닉의 소유권을 둘러싼 보험사와 선주사 유족, 탐사회사간 공방도 치열하다. 정작 타이타닉으로 재미를 본 사람은 따로 있다. 러시아 출신의 20살짜리 유대인 데이비드 사노프가 주인공.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마르코니 전신회사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익힌 무선기술로 한 백화점의 전신기술자로 일하던 중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인근의 배들과 교신, 72시간 동안 구조상황과 생존자 소식을 타전했다고 전해진다. 영웅담의 진위 논쟁 속에서도 그는 RCA를 통해 라디오 방송과 가전기기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NBC TV까지 세웠다. 심해에서 녹슬어가는 타이타닉의 영향력이 그 선체만큼이나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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