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해영씨 "봉사활동 통해 제 장애도 극복했죠"

보츠와나 '굿호프' 장애인 기술학교 교장


“보츠와나에서 십여년 동안 봉사활동하며 뭘 했냐고 물으면 한 사람을 건졌다고 합니다. 바로 제 자신이죠.”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척추장애의 불편한 몸으로도 현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기술전수와 왕성한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김해영(42)씨의 겸손한 첫마디다. 보츠와나의 장애인들을 위한 기술학교인 ‘굿 호프’ 교장이자 보츠와나 상공부 기능시험 심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현지에서 존경받는 인사로‘한국 명예대사’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지난 85년 세계장애인 기능대회에서 기계편물 부문 1위에 오르고 철탑산업 훈장까지 받았던 그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척추를 다쳐 장애인의 고된 삶을 시작했지만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극복하고 아프리카 오지에서 정상인보다 뜻 깊은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한때 “희망도 꿈도 없고 끝없는 절망과 어둠뿐…”이라며 자신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 여겼다는 김 교장. 도시락이라곤 싸본 기억이 없는 가난함도 버거웠지만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세상의 냉대. 무작정 집을 나와 한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던 그는 한남직업전문학교 직업훈련생 모집광고를 보고 원장에게 입학허가를 요청하는 간곡한 편지를 썼다. 그렇게 입학한 학교에서 6개월간의 편물 훈련 과정을 마친 후 그는 부단한 노력 끝에 84년 전국기능 경기대회에서 금상의 영예를 안았다. 입상자들을 대상으로 한 청와대 초청에서 당시 정한주 노동부 장관은 그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면서 키가 너무 작아 마음이 아팠다. 더 열심히 해라”며 격려했고 그 말은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게 된 원동력이 됐다. 삶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90년 선교사가 돼 나눔의 길로 들어섰다. “나 하나 잘 살라고 이런 복을 주신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그는 혈혈단신으로 보츠와나로 가 ‘굿 호프’에서 재활 및 편물 기술 교육을 맡아 4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보츠와나 상공부도 그의 노고에 감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 ‘사회 사업(Social Work)’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그는 “한남직업전문학교를 만나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학업이 끝나면 보츠와나로 다시 돌아가야죠”라고 밝혔다. 김 교장은 고국에서 일할 생각은 없냐는 말에 “이 사회에서 제가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요. 힘 없고 볼품없지만 저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해야죠”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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