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정신의 프랑스와 위대한 정신의 독일 없이 유럽의 부흥은 불가능하다." 1946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취리히 연설'을 통해 유럽통합을 역설했을 때 프랑스 국민은 되레 분노했다. 나치 독일에 큰 고초를 겪은 프랑스인에겐 씨도 먹히지 않을 얘기였다. 하지만 분노와 증오로 점철된 프랑스와 독일 관계에 돌파구를 연 것은 뜻밖에도 프랑스 사람이었다. 1951년 4월18일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가 출범한 것은 프랑스인 장 모네의 아이디어에 의해서였다.
△분쟁의 중심지인 루르와 자르 지역의 석탄과 철강을 공동생산하고 관리할 공동기구로 ECSC를 만들자는 게 그의 제안이었다. 전쟁 필수품인 석탄과 철강을 공동관리하는 초국적 기구가 있다면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묘수였다. 그의 생각은 주효했다. ECSC는 이후 유럽 부흥의 기폭제가 됐고 유럽경제공동체(ECC)와 유럽연합(EU)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유럽통합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유럽의회는 지난 15일(현지 시간) 단일 금융기관 청산기구 설치 법안을 처리함으로써 EU의 금융통합을 일보 전진시켰다.
△동북아의 한·중·일 관계는 거꾸로다. 되레 퇴보하고 있다. 진원지는 일본이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의 변경을 추진해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고 일본 관료와 정치인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위안부 망언을 일삼으며 주변국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독도 영유권 분쟁 역시 3국 간에 증오와 갈등을 키우고 있다.
△미국 정치학자 제니퍼 린드에 따르면 침략자가 아닌 피해자인 프랑스인들이 화해를 추구한 것은 그들이 관대해서도, 독일인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해서도 아니다. '전쟁 방지'라는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2012년 기준 한·중·일 3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2%, 세계 상품 수출의 19%를 차지할 정도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동북아 3국이 화해할 수 있는 길도 분쟁 조정과 경제 협력 확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동북아의 전략적 선택이다. /문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