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내로펌 해외법인 10곳뿐… 선진시장도 적극 공략을

[한국 로펌, 국경을 넘어라] <하> 안방 사수·해외 진출 '투트랙 전략'이 열쇠


현지법인 사실상 연락사무소 수준… 국제화로 해외기업 수임 늘려야

英 개별변호사 해외진출 지원 등 정부·협회도 외국 벤치마킹 필요


국내 문화·정서 이해 장점 살리고 접근성·국내법 검토 유리 등 부각

기업 만족도·선임률 제고 힘쓰길


지난 2000년 국내 종교기관인 A는 미국 선교단체 B와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협약이 지켜지지 않자 B는 A를 상대로 자국 법원에 수백억 원대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B는 이미 비슷한 내용의 미국 현지 소송(1심)과 한국에서 이뤄진 민사소송(1심)에서 승소한 터라 이번에도 승소가 유력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A는 현지 법원으로부터 "미국 법원은 A에 대한 관할권이 없다"는 원고패소 판결을 받아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법무법인 광장은 B가 미국연방법원이 아닌 특정 주(州)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점을 고려해 현지 사정에 밝은 중견 로펌을 선정했다. 이후 미국 법원에 관할권이 없다는 점을 발견한 광장은 이를 뒷받침할 논리와 한국 증인들의 진술서 등을 준비했고 미국 로펌은 광장의 주장과 근거가 해당 주(州)법에 맞는지 등을 점검하도록 하는 등 역할을 분담해 승소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오는 2017년 법률시장 완전개방으로 법률서비스 무역역조 현상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A와 같은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내 기업 등이 해외 로펌에 지출한 금액은 지난해에만 14억3,850만달러에 이르는 등 해외 로펌으로 빠져나가는 달러 유출 현상이 심각한 만큼 이 같은 법률서비스 지급 규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변호사들은 당장 무역역조를 줄이기 위해서는 A 사례처럼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국내 로펌을 선임한 뒤 필요에 따라 해외 로펌을 추가 선임하는 방식을 권했다.

홍승진 법무법인 광장 미국변호사는 "A 사건에서는 국내 로펌이 사실관계 등을 파악하는데 유리하다는 점이 작용했다"며 "미국 로펌이 직접 한국 고객과 접촉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걸리는 기간과 비용, 언어·문화 차이에 따른 오해 등을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 로펌과의 직접적인 일 처리가 사건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국내 로펌의 강점이 부각되면서 국내 기업의 만족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몇 해 전 국내 C로펌과 신규 해외투자사업을 진행한 D사의 법무팀 관계자는 "국내 로펌은 물리적 접근성이 좋은 데다 커뮤니케이션도 빠르고 효율적"이라며 "특히 한국 기업의 정서를 잘 이해한다는 장점이 있어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최근 국내 로펌의 자문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져 해외 업무에 관한 자문사를 선정할 때 국내 로펌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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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로펌은 해외 로펌보다 적은 비용과 해외투자신고 등 국내법 검토의 필요성 등에서도 유리하다.

그렇다고 해서 법률시장 전면개방에 맞서 '안방 시장'을 지켜내는 게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지난 2004년 법률시장을 완전 개방한 일본은 영·미계 로펌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런 일본조차도 도요타와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 자문은 영미 로펌이 맡는 등 한계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법률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내수시장에만 치중해 전면개방 후 상위 10대 로펌 중 토종 독일로펌이 4곳에 그칠 정도로 해외 로펌에 잠식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이유로 안방 수성과 함께 해외 진출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기적으로는 적극적인 해외진출로 해외 기업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국내 로펌이 해외에 법인이나 사무소 등을 개설한 건수(2014년 3월 기준)는 32건에 불과할 정도로 국내 로펌의 해외 진출 사례는 미미하다. 현지에 법인을 설립한 경우는 10곳뿐이고 각 사무소에 상주하는 변호사 수도 현지 변호사를 합쳐 1~6명에 불과했다. 법인의 업무도 사실상 연락사무소 수준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특히 법률시장 개방 대상인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의 진출은 거의 없다.

최남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대형 로펌들이 해외 현지진출을 미루고 있는 게 한국 법률서비스의 수출이 확대되지 않고 정체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며 "중소형 로펌이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지만 아직은 한국 본사에서 주요 법무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반면 2009년 영국의 상위 130개 로펌 가운데 해외 사무소를 가진 곳은 50%를 웃돌고 국제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도 전체의 77%에 이르는 등 높은 국제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인 글로벌 로펌인 클리포드 챈스(Clifford Chance)는 해외에 37개 지사를, 링크레이터스(Linklaters)는 30여개의 지사를 두는 등 해외 법률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협회도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호주 법무부 산하기관인 국제법률서비스협회(ILSAC)는 법무부 장관에게 호주 법률시장 활성화와 국제적 진출 등을 자문하며 세계적 법률 서비스와 시장 진입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법률서비스 수출의 수익 또는 무역수지를 증대시킨다'거나 '법률서비스 수출에서 호주 로펌의 참여를 증가시킨다' 등의 목표를 세우고 활동 중이다. 영국의 경우 7년 미만의 소송변호사는 국제전문직 및 법률서비스 개발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으며 소송변호사협회가 참여 비용의 3분의 2까지 부담하는 장학금 제도를 만드는 등 개별 변호사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법률서비스 해외 진출을 위한 세제지원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면서 "정부는 올해 말께 나올 연구용역결과를 토대로 국내 로펌이 해외 진출할 때 지원할 정책들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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