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6일] 폴 게티

구두쇠에 바람둥이, 악덕 기업가이지만 투자의 천재. 석유왕 폴 게티(J Paul Getty)의 면면이다. 변호사 출신인 그의 부친 역시 석유재벌. 그는 16세 때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일당 3달러짜리 막노동꾼으로 일하며 업무를 익혔다. 버클리ㆍ옥스퍼드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그는 22세인 1914년 자기 사업에 나서 바로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유전을 운 좋게 사들이며 잘 나가던 25세의 게티는 은퇴를 선언, 가족과 주변을 경악시켰다. LA의 유명한 플레이보이로 2년을 보낸 후 집안 사업에 합류했지만 실권 없이 지내야 했다고. 게티의 승부근성이 발휘된 것은 1930년 이후. 대공황의 와중에서 부친 사망으로 전권을 잡은 후 대형 석유회사 주식을 저가 매입해 큰돈을 만졌다. 게티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았다. 종업원을 모두 해고한 뒤 저임금으로 재고용하고 나치에 박해받던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의 저택을 방문, 고가구를 헐값에 싹쓸이한 적도 있다. 대박을 터뜨린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1948년 확보한 유전이 1953년부터 기름을 뿜어냈다. 1957년 ‘포천’지는 그를 세계 최고의 갑부로 꼽았다. 사업과 달리 개인사는 다섯번 결혼과 수많은 외도ㆍ불화로 얼룩졌다. 부모의 장례식에도, 아들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76년 6월6일 사망할 때까지 유언장을 21번이나 고쳐 쓰며 자식들을 옥죄었다. 손님들이 쓰는 전화료가 아까워 대저택에 공중전화를 설치한 적도 있다. 게티는 괴팍한 삶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미국 5대 미술관의 하나라는 LA 소재 ‘게티 박물관’에 유산 5억달러와 소장품을 기부한 덕분이다. ‘플레이보이’지 연재물을 엮은 스테디셀러 ‘부자가 되는 법’도 그의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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