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조선, 수주 가뭄속 '계약 지키기' 비상

발주 취소·선종 변경 외상등 변칙요구 잇따라<br>저가 수주땐 중장기 부담 설비 축소등 대책 부심


"기존에 들어온 주문을 유지하는 게 올해의 최우선 목표입니다."(A조선의 한 고위관계자) 조선 수주가뭄 속에 계약 취소와 잔금지급 연기, 선종변경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선사들의 유례없는 변칙 요구로 조선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주요 조선사들은 선사들의 발주 변경 요구가 크게 늘자 고심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들이 발주 취소ㆍ변경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며 "국내 조선업계가 그야말로 '계약 지키기'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독일의 선박금융업체 로이드폰즈로부터 따낸 1만2,8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의 주문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CMA-CGM도 한진에 주문했던 컨테이너선 2척에 대한 인도금을 지급하지 못해 한진중공업에서 1척은 매각 처분하고 1척은 계약 취소를 선언한 상태다. 한진은 또 기존 계약한 탱커 3척을 벌크선 3척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계약금액은 3,282억원에서 2,513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규모가 더 큰 주요 조선사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주요 조선사의 한 관계자는 "발주취소나 변경 여부는 영업상의 기밀"이라면서도 "최근 운임이 좋은 벌크선 쪽으로 (계약) 전환 움직임이 뚜렷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덤핑에 가까운 저가 수주도 우려를 낳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원유운반선 5척을 4,000억원에 건조하기로 계약했다. 성동조선해양도 최근 벌크선 2척을 1,300억원에 수주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수주가뭄 속 계약 소식은 언뜻 반갑게 들리지만 불과 2년 전의 3분의2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은 중장기적인 경영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다. B조선의 한 관계자는 "단기적인 성과와 생산설비 운영을 위해 주문을 받고 있지만 지난친 선가 하락으로 나중에 큰 곤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잔금지급을 미루는 외상 선주들도 골칫거리다. 선박 가격의 70~80%만 지급한 뒤 나머지는 3~4년 후로 미루는 등 변칙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해외 선사들은 수출입은행 등에 약 13억달러 규모의 선주금융을 요청하기도 했다. 첫 수주계약 당시보다 환율이 하락한 상태여서 잔금 지불시기에 변동이 오면 조선업체의 손해는 더욱 커진다. 하지만 업황이 워낙 좋지 않아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 현대와 삼성의 경우 올 들어 수주 실적이 제로(0)여서 대응범위에 한계가 있다. 그나마 현대중공업은 글로비스와의 차량운반선 계약을 가뭄의 단비처럼 기다리고 있고 삼성중공업은 이미 수주한 일감을 위안거리로 삼는 형편이다. 결국 일부 조선사는 생산설비 축소와 인력 재조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와 삼성 등 대형 업체는 조선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플랜트 등 다른 분야에 집중해 수익성 하락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사업상 손해를 입을 수 없어 선박 매각 등 발주 취소나 변경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사 관리 또한 외면할 수 없어 고민"이라며 "이대로면 자칫 업계 전체가 올해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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