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여의도 증권가는 감사원이 증권사 직원들의 금융거래내역을 조사했다는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감사원은 "금융감독원 검사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지만 증권사들은 민간 회사의 임직원까지 감사원이 감사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해 감사원이 서민금융 지원실태를 조사하겠다는 명분으로 금감원 검사를 하면서 민간 금융사인 부산저축은행 등 5개 저축은행을 감사했다가 논란이 됐던 것과 같은 형국이다. 금융회사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시어머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회사들은 속된 말로 금감원 한 곳만 무서워하면 됐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부실 문제 논란으로 금감원의 힘이 빠진 틈을 타 감사원과 한국은행ㆍ예금보험공사 등이 금융권 영역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금감원 출신 인사의 낙하산을 막은 틈을 타 감사원과 정치권 인사들이 금융권 고위직으로 무더기로 내려가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금감원의 감독을 믿지 못한다는 여론을 비집고 곳곳에서 금융회사들의 시어머니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형국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시어머니(금감원)의 등쌀에서 벗어나는 듯했더니 숨겨진 다른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나타나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금감원 숨은 사이 곳곳에서 낙하산 투하=최근 금융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산업은행ㆍ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과 우리금융지주ㆍ우리은행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을 중심으로 2년에 한 번꼴로 감사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방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감사원은 9월 대우증권ㆍIBK투자증권ㆍIBK연금보험 등 금융공기업 계열 증권사를 감사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금감원과 한국거래소 등을 대상으로 '증권시장 운영 및 감독실태'를 감사했다. 감사원 출신 감사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자산관리공사 감사는 11년째 감사원 인사가 차지하고 있고 청와대 출신 인사의 낙하산 논란이 있었던 기업은행도 7월 감사원 출신이 감사자리에 앉았다. 우리은행ㆍ서울신용평가 등도 감사원 인사가 감사로 있다. ◇금감원 대신 칼 집은 기관들=저축은행 사태 이후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는 2금융권 검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은행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한은은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 등에만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이 범위가 저축은행ㆍ증권사ㆍ보험사 등으로 확대된다. 또 한국은행이 요구시 금감원은 1개월 내 공동검사를 응해야 한다. '경제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도 금융권에 관심이 많다. 공정위는 최근 공시이율과 예정이율을 담합한 삼성ㆍ교보ㆍ대한생명 등 주요 보험사에 3,653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최근에는 생명보험사 변액보험도 담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불만이 많다. 너도나도 금융사 옥죄기에 나서면서 영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고위관계자는 "금감원뿐만 아니라 한국은행ㆍ감사원ㆍ예금보험공사ㆍ공정위 등 모셔야 할 상전이 많아졌다"며 "금융은 감독전문기관인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있는데 이렇게 여러 군데에서 나서니 눈치 볼 곳만 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사원의 경우 금감원을 통한 간접 감사관행이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금융권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감사원이 저축은행까지 감사하더니 최근에는 증권사 등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며 "금감원을 통해서 하는 식이라고 한다면 국내에 모든 사기업들도 다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감사 기준 명확히 해야=물론 금감원을 대신해 다른 곳에서 나서는 것의 순기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금융감독기관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금감원 등을 상대로 착수한 '증권시장 운영 및 감독실태'에 관한 감사과정에서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예탁금 이자) 400억원가량을 매년 떼어먹은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증권사 대표와 임직원들은 차명으로 대규모 불법 주식거래를 한 정황이 적발됐다. 금감원은 '눈뜬 장님'이었다. 감사원은 지난해에는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을 감사하면서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부산저축은행 비리를 찾아내기도 했다. 공정위도 업계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생보사들의 공시이율 담합을 잡아냈다. 금감원은 여태껏 "공시이율에 문제가 없다"며 업계를 변호해왔다. 금융권의 고위관계자는 "예전에는 감사원 등의 검사 능력이 금감원에 많이 못 미쳤지만 최근에는 많이 높아졌다"며 "금감원 등에서 관행적으로 넘어가거나 눈감았던 부분을 많이 지적한다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문제는 감사원 등 다른 기관이 나설 때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월권 논란을 막기 위해서다. 일반 민간 금융사를 감사할 경우에는 더 그렇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도 "감사원이 저축은행 감사는 잘했지만 월권은 월권"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교수는 "현행 감사원법에는 감사원의 감사범위나 권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며 "이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나 예보의 경우도 군기 잡기식 검사 요청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 이들 기관이 "금감원의 정보독점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만큼 금감원도 달라진 감독 환경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