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마키아벨리가 한국정치를 본다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밑에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 외부 침략으로 크게 훼손되면서 방치된 유물과 유적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다. 해외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도 유적이지만 곳곳에 배치돼 있는 공무원들이다. 3~4명의 관리인만 있으면 유적관리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수십명의 공무원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둥거린다. 관광객 방문이 적은 날에는 관광객보다 공무원이 더 많을 정도다. 왜 그럴까. 국회의원들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며 공무원 수를 급격히 늘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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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지역구민들에게 가족이나 친척을 공무원으로 취직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국민은 달콤한 장밋빛 공약을 내거는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그리스 개별 가정마다 공무원이 한 명 있을 정도로 그리스는 '공무원 천국'이다. 고대 도시국가의 화려한 명성과 위용을 자랑했던 그리스가 지금 글로벌 경제의 '말썽꾸러기'로 전락한 데에는 이 같은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정부의 퍼주기 예산 집행이 똬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나라 곳간을 감안하지 않은 예산 집행은 심장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날이 돼 그리스 국민의 숨통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이웃 나라들에 빈 깡통을 들이밀며 구걸을 하는 불쌍한 신세가 된 지 오래다.

4ㆍ11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 정치권이 시끄럽다. 공약의 대부분은 '복지'에 편중돼 있다. '누가 더 많은 복지정책을 내놓나' 끝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구별이 없고 보수와 진보의 경계도 없다. 국가 재정은 후세 사람들의 세금으로 메우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우선 표심을 잡자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나라 곳간이 '화수분'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현기증이 날 정도다. 500년 전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자기가 인색하다고 수군대는 소리에 개의치 않는다. 경비를 절약해서 재정 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한 결과 그가 백성들에게 무거운 부담을 주지 않은 채 자기 재력으로 적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후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인색하게 행동한 지배자들만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그렇지 못한 지배자들은 모두 파멸했다." 마키아벨리가 오늘날 한국 정치를 본다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하지 않을까.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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