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치열한 삶속 되찾아야할 가족 풍경

■ 엄마의 집 / 전경린 지음, 열림원 펴냄


안녕, 내 이름은 호은이야. 내 얘기 한 번 들어볼래? 난 얼마 전 대학교에 입학해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어. 학교에선 페미니즘 대학연합 서클에 가입했고, 교내 동성애 서클 활동도 하고 있어. 얼마 전 일이야. 엄마와 이혼한 뒤 내 양육권을 포기했었던 아빠가 느닷없이 학교로 찾아왔어. 그러곤 재혼한 뒤 낳은 딸 승지를 내게 남겨두고 가 버렸어. 하는 수 없어서 엄마에게로 가야 했지. 엄마는 생계 때문에 나랑 같이 여기저기 떠돌다가 6년 전에 나만 외할머니에게 맡겨두고 홀연히 떠나버렸어. 그러다가 몇 해 전 일러스트레이트한 캐릭터가 대박이 나면서 24평 집을 마련했고 다시 나랑 같이 살게 됐던 거야. 지금은 내가 대학 기숙사에 사니까 또 떨어져 살게 된 거지. 엄마는 승지를 보더니 나보다 더 놀랐나 봐. 한 동안 아빠를 찾는다고 난리더니 결국 연락이 안 돼 포기하더라. 승지와 엄마, 그리고 난 생각보다 빨리 친해졌어. 우린 함께 아빠 흉을 보면서 신나게 웃었고, 함께 쇼핑도 갔어. 집안에 마침내 활기가 도는 게 느껴졌어. 음식 냄새가 가득하고, 부엌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해졌으니까. 중학교 2학년인 승지가 첫 생리를 했을 때, 우리 엄마는 승지에게도 온전히 엄마의 모습으로 다가갔어. 난 대학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잖아. 엄마의 집은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 같은 느낌이야. 엄마의 집에서 나와 승지는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떠 맡지 않고 한 인격체로서 정체성을 찾아가. 내가 양성애자면 어떠냐고 엄마에게 물었을 때, 엄마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맡겨두었어.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집은 자유와 화해, 공존과 독립의 공간이야. 피가 섞이지 않은 승지와 엄마도 가족이 되고, 엄마와 내가 서로 다름을 이해하면서 자유를 찾아가는 곳이지. 엄마의 집은 오류와 실수로부터 자유롭고 온전한 인간을 위해 우리 사회가 만들어 가야 하는 이상적 집의 모습을 담고 있어. 혹시 전경린이란 소설가 들어 봤니? 1995년 등단한 뒤, 한국일보 문학상ㆍ이상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은 작가야. 열정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가 이번에 치열한 삶 속에서 되찾아야 할 가족의 풍경을 담은 소설을 냈거든. 그 주인공 역을 맡은 게 바로 나, 호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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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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