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대화재' 잿더미서 꽃 핀 마천루의 향연

Chicago<br>'갱들의 무대' 오명 벗고 藝鄕의 도시로…<br>네이비 피어 등 곳곳 관광명소… 뉴욕·LA이어 美 3대 도시로<br>신고전 양식 시카고 미술관엔 모네·고흐 등 거장 작품 빼곡히

잿더미 위에서 새롭게 탄생한 마천루는 전 세계인들에게 시카고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스카이라인을 뽐내고 있는 시카고의 야경.

근현대 미술 거장들을 만날 수 있는 시카고 미술관.

종합예술의 집합체인 시카고 극장 등이 시카고의 다양한 매력을 물씬 풍긴다.

1871년 10월8일 일요일 저녁 미국 시카고 웨스트 사이드의 드코븐 스트리트 137번지. 패트릭 올리어리 부부는 목조 가옥 뒤편 헛간에서 한참 소젖을 짜고 있었다. 신경이 곤두선 암소는 젖을 짜는 도중 난폭해져 뒷발로 불이 켜진 등유 램프를 걷어찼다. 그 바람에 헛간은 곧 불길에 휩싸였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기억되는 '시카고 대화재'의 시작이었다. 소 발길질로 시작된 화재는 3일 동안 약 1만8,000동의 건물을 파괴하고 1억9,600만달러로 추정되는 재산 피해를 냈다. 미시간 애비뉴 도로변의 일부 건물을 제외하곤 목조 건물로 지어진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다. 당시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 숫자만 해도 10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아니러니하게도 참혹했던 대화재는 시카고에 '세계 최고의 마천루'를 자랑하는 도시라는 운명을 가져다줬다. 시카고인들은 화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잿더미 위에 새 건축물을 채워나갔다. 이후 1세기 동안 도시 전체가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의 창작공간과 놀이터가 됐다. 재건사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덕분에 시카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양식을 지닌 건축물들의 경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카고라는 지명은 인디언 말인 '야생 양파'가 어원이다. 1736년 최초 정착자를 시작으로 19세기 미군의 포트 디어본 기지로 사용되다가 1833년 43세대, 인구 200명의 '시카고'마을이 정식 발족했다. 이후 일리노이주에 미시간호를 끼고 위치한 시카고는 동부와 서부가 만나는 지리적 요건에 힘입어 전국 철도망의 중심이자 5대호의 항구 역할을 하며 급격히 발전했다. 현재는 뉴욕ㆍ로스앤젤레스(LA)에 이어 미국 세 번째의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시카고는 또 '갱들의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급격한 상업 발달과 미숙한 사회 시스템으로 검은 돈이 활약하는 부패의 온상이 됐던 것. 특히 미국에서 금주법이 발효되던 1920~1930년대 '밤의 황제'로 군림하던 전설적인 갱단의 두목 알카포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바로 시카고였다. 미국인들은 시카고를 '바람의 도시'라고 부른다. 미시간호에서 사시사철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시카고 사람들의 빠른 말씨를 바람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혹자는 시카고가 미국의 변화를 선도하는 바람을 몰고 오는 곳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968년 민주당의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촉발된 시위는 국민참여경선제도(오픈 프라이머리)의 근간이 됐다. 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역시 시카고다. 그는 2008년 11월 시카고 그랜트공원에서 대통령직 수락연설을 하며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을 이곳에서 장식했다. 한 장 한 장 양파의 껍질을 벗겨내듯 끊임없는 매력으로 전 세계 여행가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시카고. 그런 시카고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지도 한 장과 발이 편한 플랫슈즈 한 켤레만 있으면 충분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건물 하나, 벽돌 한 장에서도 '도시 이상의 도시' 시카고의 멋과 향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 미술 거장들과 만나는 시카고 미술관=시카고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미시간 애비뉴에는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1893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된 시카고 미술관이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보스턴의 보스턴미술관과 함께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예술작품 5,000여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이집트ㆍ중국ㆍ아시아, 중세ㆍ현대 등 지역별, 시대별로 전시관이 구분돼 있다. 특히 모네와 드가, 반 고흐, 피카소 등 후기 인상파들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시카고의 새로운 심장, 밀레니엄파크=시카고 미술관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밀레니엄파크는 1997년 당시 시카고 시장이었던 리처드 데일리가 계획해 1998년부터 2004년에 걸쳐 완공했다. 다양한 건축물과 기념비적 조각작품, 조경 디자인 등이 9만9,000㎡ 부지 위에 어우러져 시카고의 새로운 상징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스페인의 개념 예술가인 하우메 플렌사가 디자인한 '클라우드 게이트'가 대표적인 볼거리다. 은색 땅콩 모양의 클라우드 게이트는 스테인리스 재질로 조형물 외벽을 마감해 시카고의 우아한 마천루가 조형물에 그대로 투사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중서부 최고 관광 명소, 네이비 피어=미시간호와 미시간강이 교차하는 지점에 약 1,000m의 길이로 길게 뻗은 네이비 피어는 연간 8,6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미국 중서부 최고의 관광 명소이다. 본래는 1916년에 선박 운송과 오락시설을 위해 건설됐다가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군사 훈련 장소와 각종 콘서트, 전시 공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네이비 피어의 상징인 거대한 대관람차를 병풍 삼아 20만㎡의 부지 위에 공원ㆍ산책로ㆍ정원과 놀이시설 및 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네이비 피어 빌딩 내에 위치한 시카고 어린이 박물관과 아이맥스 영화관, 실내 정원인 크리스털 가든 등이 유명하다. ◇물 위에서 즐기는 1세기 건축사 투어=매년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성지순례하듯 방문하는 시카고. 개성 넘치는 시카고의 건축물을 가장 쉽게 감상하는 방법은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시카고는 미시간호에서 파생된 미시간강이 남과 북으로 'ㅅ'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도시 전체를 아우르고 미시간강변을 따라 100년이 넘는 건축사들이 차곡차곡 정렬돼 있다. 네이비 피어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크루즈의 '건축물 투어'를 이용하면 1~2시간 동안 전문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시카고의 주요 건축물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1974년에 완공된 높이 443m, 110층 규모의 윌리스타워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옥수수 모양의 쌍둥이 빌딩인 마리나 시티와 고풍스런 시계탑이 상징인 르네상스풍의 리글리 빌딩도 시카고의 랜드마크이다. 대재앙의 장본인으로 지목됐던 캐서린 올리어리 부인과 암소는 대화재 이후 12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누명을 벗었다. 지난 1990년대 후반 시카고 시의회는 대화재 당시 목격자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올리어리 부인과 암소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화재 당시에도 반(反)아일랜드인에 대한 정서 때문에 아일랜드계인 올리어리 부인이 억울하게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대화재의 이유야 어떻든 잿더미 위에서 꽃피운 스카이라인의 향연이 전 세계인들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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