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박완서, 그녀는 누구인가

질곡의 삶을 소설로 승화… 한국 문학계 친정 어머니

"올 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눈도 많이 왔다…(중략) 작년의 그 유난스러운 더위가 이 엄동설한에도 문득문득 생각나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 한국 문학계의 거목인 고(故) 박완서 선생의 2001년작 단편소설 '그리움을 위하여'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속 '어머니'는 자식들 고생시킬까봐 "춥도 덥도 않을 때 죽기를 소망"했으나 한겨울에 돌아가셨다고 묘사돼 그리움을 자극한다. 박완서 자신도 엄동설한에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생전에 "내 문학 세계의 근원은 어머니"라고 종종 언급했지만 스스로는 한국 문학계의 친정 어머니로 살아왔다. 지난 22일 타계한 그는 대표작 제목인 '나목'처럼, 잎이 다 떨어진 겨울 나무처럼, 자연으로 돌아갔다.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데뷔한 고인은 위로의 글쓰기로 자신의 상처와 함께 세상의 아픔을 보듬어왔다. 그래서 '한국 문학의 거목'이라 불렸고 왕성한 창작욕은 '영원한 현역'이란 별명을 얻었다. 1931년 경기 개풍 태생인 고인은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중퇴했다.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부상을 입고 돌아온 오빠가 세상을 떠나는 등 그가 겪은 전쟁의 참상은 문학을 하는 원동력이 됐다. 생전에 고인은 "6ㆍ25가 없었어도 내가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며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언젠가는 이걸 쓰리라"고 생각했다고 2010년 문예지 '문학의 문학'에 실린 대담을 통해 회고했다. 지난해 7월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도 그는 "6ㆍ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전쟁을 겪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 해가 회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다. 노구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라고 되뇌었다. 대학 중퇴 후 고인은 미8군의 PX에 취직해 일하다가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이 만남은 훗날 그의 데뷔작인 '나목(裸木)'으로 이어진다. 1953년 호영진 씨와 결혼해 1남4녀의 어머니로 살던 그는 1970년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서 이 소설로 등단했다. 소설 '나목'은 전쟁 중 PX에서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손수건에 초상화를 그려주던 박수근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이후 그는 전쟁과 분단, 물신주의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비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1988년 남편과 외아들을 연이어 잃는 슬픔을 겪고 고인은 가톨릭에 귀의한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등 이후 펴낸 자전적 소설들은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면모를 투영했다. 지난해 펴낸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고인은 "씨를 품은 흙의 기척은 부드럽고 따숩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진다"며 죽음을 초월한 모습을 보였고 그 해 가을 담낭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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